박의래
| 2026-06-11 11:30:25
질병으로 규정된 환각, 예술로 다시 그리다…이근민 개인전
파편화된 신체와 감각의 재구성…PKM갤러리서 신작 23점 선보여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구사마 야요이. 그는 어린 시절 온 세상이 둥근 점으로 뒤덮인 환각을 경험했고, 이를 평생 작업의 모티프로 삼았다.
구사마 야요이처럼 환각의 경험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둔 작가 이근민(44)의 개인전 '장면이 되기 전'이 서울 삼청동 PKM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대형 신작과 드로잉 등 총 23점이 소개된다.
작가는 대학 입학 후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이 경험을 통해 두 가지를 마주했다.
하나는 문명사회가 개인을 질병 코드로 재단하고 분류하는 폭력성이었다.
다른 하나는 파편화된 인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 상처와 날것의 이미지가 뒤섞여 출몰하는 환각이었다. 그는 이러한 기억을 외면하지 않고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아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의사가 내 환각을 병의 증상으로 규정하지만 그림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증상이 아닌 예술 작품이 된다고 생각했다"며 "전시 제목 역시 사람들이 내 환각을 하나의 장면으로 규정하기 이전의 상태를 표현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유기체 접시'(Organic Plate), '연결된 신체'(Connected Body), '정신과 의사의 머리'(Psychiatrist's Head) 등 전시에 나온 회화는 그가 환각 속에서 목격한 해체되고 흩어진 신체의 형상들이다. 검붉은 장기와 피부가 캔버스를 가득 메운다.
강렬한 이미지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주기도 하지만 그로테스크한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다.
작가는 "파편화된 인간 형상의 환각을 경험했고 캔버스 앞에서는 이를 재료로 삼아 이성적으로 재조합한다"며 "재료는 감정적이고 즉흥적일 수 있지만 과거의 나를 관찰하듯 그리기 때문에 매우 이성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밑그림이나 계획 없이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린 드로잉 연작도 선보인다. 작품은 사회에서 밀려난 원시적이고 불온한 생명체를 연상시킨다. 사회가 정한 규격에 맞춰지기 전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이근민은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2022년 스페이스K 개인전을 비롯해 서울, 뉴욕, 파리, 베를린 등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스페이스K, 마드리드 콜렉시온 솔로, 박서보재단 등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7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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