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적 즐거움 선사한 '베르테르'…국립오페라단 올해 첫 공연

비디오 매핑 활용한 무대 눈길…밀도와 집중력 보인 국립심포니 음악
이범주·정주연·노동용의 빼어난 가창…26일까지 예술의전당

임순현

| 2026-04-25 11:29:22

▲ 오페라 '베르테르' 1막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오페라 '베르테르' 1막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오페라 '베르테르' 3막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오페라 '베르테르' 4막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오페라 '베르테르' 4막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시각적 즐거움 선사한 '베르테르'…국립오페라단 올해 첫 공연

비디오 매핑 활용한 무대 눈길…밀도와 집중력 보인 국립심포니 음악

이범주·정주연·노동용의 빼어난 가창…26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박혜진 신임 단장 겸 예술감독을 맞이한 국립오페라단이 지난 23일 저녁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2026년 첫 공연작 '베르테르'의 막을 올렸다.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고통받는 주인공 베르테르의 극단적 선택이 극의 핵심인 만큼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가 지배적인 작품이지만, 영화감독 박종원의 연출과 볼프강 폰 주벡의 무대·의상·조명·영상은 전체적으로 밝고 다채로웠다.

구노, 비제와 함께 19세기 프랑스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쥘 마스네의 '베르테르'는 그의 다른 대표작 '마농'이나 '타이스' 같은 화려한 스펙터클이 없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작품이다. 장면의 호흡이 길고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으며, 대본도 음악도 주인공들 내면의 섬세한 변화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런 어려움을 연출가와 무대디자이너는 형태와 색과 빛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대, 비디오 매핑을 적절히 활용한 무대의 시각적 즐거움으로 극복해냈다.

마스네 원작에서의 배경이 7월인 1막 무대는 여주인공 샤를로트의 집 앞이다. 건물 왼편에 서 있는 잎이 무성한 보리수는 주인공 베르테르가 사랑하는 자연의 상징물로 보인다. 원작 오페라에는 베르테르와 샤를로트가 함께 간 무도회 장면이 등장하지 않지만, 이번 프로덕션에서는 반투명 샤막에 영상으로 샹들리에와 무도회장 창틀을 입혀, 장면 전환 없이도 무도회 장면을 꿈속처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마을 목사의 금혼식이 열리는 2막으로 가면 계절은 10월이고 샤를로트와 알베르가 결혼한 지는 3개월이다. 그 사이 불행으로 타들어 간 베르테르와 샤를로트의 마음처럼 보리수 잎새들은 푸른빛을 잃어간다.

야외 배경인 1, 2막과 달리 3막과 4막 무대는 넓은 창문으로 바깥 풍경이 보이는 실내 무대다. 3막 무대는 책상과 건반악기가 놓인 넓은 서재지만, 샤를로트가 베르테르의 편지를 끊임없이 되풀이해 읽는 동안 창밖 풍경은 빠른 속도로 저녁에서 밤으로, 밤에서 새벽으로 전환된다.

베르테르가 떠난 뒤 샤를로트의 시간이 한없이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흘러감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베르테르가 숨지는 4막으로 넘어갈 때 세상은 눈으로 덮이고, 영상으로 멀리 보이던 베르테르의 집은 실제 무대 구조물이 되어 앞쪽으로 밀려 나온다. 이렇듯 세심한 연극적 장치들은 이 오페라를 처음 보는 관객에게도 작품 이해를 수월하게 만들었고 몰입도를 높였다.

홍석원이 지휘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마스네 연주는 감동 그 자체였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혼연일체가 되어 단 하나의 음도 소홀히 흘려보내지 않으며 경이로운 밀도와 집중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잘 아는 오페라 애호가들은 이날 연주 덕분에 마스네의 '베르테르' 음악의 깊이와 열정을 새롭게 발견했다며 감탄을 표했다. 특히 저음 현악기가 표현하는 깊은 슬픔과 절망은 전율을 일으켰다.

10년 전 이미 바그너의 탄호이저 역으로 데뷔한 테너 이범주는 풍성한 음량, 단단한 소릿결, 강렬하면서 서정적인 표현력을 고루 갖추고 있어 베르테르에 적역이었다. 샤를로트 역의 메조소프라노 정주연은 뛰어난 가창력과 샤를로트에 어울리는 음색으로 책임감과 자제력이 뛰어난 인물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알베르 역의 바리톤 노동용은 이성과 사회적 질서에 충실한 인물을 성악적으로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소피 역의 소프라노 문현주는 투명하고 맑은 미성으로 무겁고 어두운 음악에 밝은 활력을 불어넣었고, 대법관 역의 베이스 최공석, 슈미트를 노래한 테너 이재명, 요한 역의 바리톤 김원, 이 세 배역의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호흡과 각각의 개성도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국립오페라스튜디오의 청년교육단원과 합창단, CBS소년소녀합창단 여덟 명의 적극적인 참여 역시 공연의 완성도에 기여했다.

발레리노 성재승, 발레리나 손민지를 베르테르와 샤를로트의 아바타로 기용해 아리아의 감정을 춤으로 더욱 선명하게 표현한 데 대해서는 호오가 갈렸다. 춤은 훌륭했지만, 관객의 눈길이 무용수를 따라가다 보니 노래에 집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발레 무용수들을 통해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결합하는 두 영혼을 표현한 것은 원작의 의미에 비춰볼 때 적절한 결말로 보이지는 않았다.

공연은 두 캐스트로 26일 일요일까지.

rosina03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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