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사랑한 건 그일까 글일까…뮤지컬 영화 '시라노'

오보람

| 2022-02-16 11:32:55

▲ 영화 '시라노' 포스터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시라노' 속 한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시라노' 속 한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시라노' 속 한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녀가 사랑한 건 그일까 글일까…뮤지컬 영화 '시라노'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어요."

근위병 대위 시라노(피터 딘클리지 분)가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여인 록산(헤일리 베넷)의 고백을 듣고 있다. 시라노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상대방 역시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조언한다. 록산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하지만 전 그 사람과 말도 못 섞어 본걸요."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시라노의 마음은 무너져내린다. 잠시나마 록산이 사랑하는 상대가 자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그의 희망도 산산이 조각난다.

조 라이트 감독의 신작 '시라노'는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연애편지를 대필하게 된 시라노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영화다. 주연 배우 딘클리지의 아내이자 동명의 뮤지컬을 쓴 에리카 슈미트가 각본을 썼다.

영화는 뮤지컬 원작인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숭고미와 고전미를 그대로 살려냈다. 17세기 작품이 원작인 만큼 스토리가 다소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특유의 분위기와 배우들의 호연이 몰입감을 높인다.

라이트 감독은 전작인 '오만과 편견', '안나 카레니나' 등에서 그랬듯, 이번 영화에서도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내세웠다. 의상과 세트를 통해 시대적 배경 역시 솜씨 좋게 구현해 보는 맛을 더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록산은 남자의 꽃이나 인형으로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귀족 여성이다. 자신을 탐내는 돈 많은 권력가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가 첫눈에 반한 남자는 시라노 연대로 발령 난 신병 크리스티앙(켈빈 해리스 주니어)이다.

훤칠한 외모의 크리스티앙을 보자 시라노는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진다. 전장을 이끄는 용맹함과 결투 실력, 거기다 음유시인이라 할 만큼 빼어난 글솜씨와 언변까지 갖춘 그에게 외모는 딱 한 가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라노는 키와 체격이 성인 남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왜소증 환자로 늘 '괴물'이라는 소리를 듣고 산다. 이런 자기가 젊고 아름다운 여인 록산을 감히 사랑하는 것은 세상이 허락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다 록산에 대한 진심을 전할 기회가 찾아온다. 글솜씨가 없는 크리스티앙을 대신해 록산에게 연서를 쓰게 된 것이다. 비록 자신의 진짜 정체는 숨겨야 하지만 사랑이 담뿍 들어간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라노는 행복에 겨워한다.

매일같이 배달되는 편지가 크리스티앙이 쓴 것이라 철석같이 믿는 록산은 사랑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크리스티앙이 '아이 러브 유'라는 말만 반복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아름다운 구절이 빼곡히 적힌 편지와는 달리 낭만이라곤 전혀 없는 그에게 마음이 식은 것이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두 남자보다 이들 사이에 놓인 록산의 마음에 시선이 가도록 만들어졌다. 좀처럼 알 수 없는 록산의 진심은 마지막 장면에서야 헤아릴 수 있게 된다.

록산이 사랑한 건 크리스티앙이었을까 아니면 크리스티앙이 썼다고 믿었지만 실은 시라노가 쓴 글이었을까. 그리고 세 사람의 앞에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오는 23일 개봉. 상영시간 123분.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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