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래
| 2026-09-21 11:22:32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서로 다른 주파수에 맞춰진 라디오들이 한 방에서 동시에 울린다면 어떤 풍경이 만들어질까.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26 아트스펙트럼 전시 '방이있고모든라디오가각기다른주파수를향하고있다'는 이런 상상에서 출발한다.
2001년 국내 신진 작가 발굴과 지원을 위해 시작된 아트스펙트럼은 2024년부터 참여 작가 범위를 아시아로 확대했다.
올해는 시각예술·건축·영화·디자인·음악을 넘나드는 아시아 작가 23명(팀)이 63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파리 팔레 드 도쿄와 공동 기획했으며 처음으로 리움미술관이 아닌 호암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를 하나의 정체성이나 틀로 묶지 않고, 각 지역에서 나온 다양한 예술 활동과 서로 다른 감각·시간이 만나는 가능성을 살핀다. 제목처럼 개별 작업이 하나의 주제나 방향으로 수렴하기보다 각자의 역사적·사회적·기술적 배경을 유지한 채 교차하고 공명하는 장을 지향한다.
미술관 로비에 들어서면 김지환·민성식으로 구성된 'dpgp78'의 대형 벽화 '달빛 알러지'를 비롯해 그라피티와 힙합, 스케이트보드 등 거리 문화 분위기를 담은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굵은 사선의 마커 윤곽선과 손으로 문질러 번지게 한 목탄 그림자를 활용해 벽면 전체에 리듬감 있는 화면을 만든다.
화면에는 공중에 떠 있는 의자를 바라보는 검은 고양이와 장식처럼 늘어진 사슬, 코끼리로 이뤄진 격자, 벽 밖으로 날아가는 별똥별 등이 등장한다. 동물 발자국은 몇 미터 떨어진 야외 벽까지 이어진다.
작가는 유머와 낯선 연상을 통해 관람객이 각자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장 안에서는 중국 작가 루오판 첸의 커미션 신작들이 노동 현장에 감춰진 위험을 드러낸다.
작가는 우한의 가구 공장에서 일하는 목수와 노동자들이 먼지를 계속 흡입하며, 이로 인한 질병 문제를 겪는 현실에 주목했다.
극적으로 무너진 집 아래에 미세한 먼지가 쌓인 모습은 완성된 건축물 뒤에 가려진 노동과 위험을 떠올리게 한다.
낚싯줄로 유리섬유를 닮은 구조를 만든 작업도 함께 선보인다. 산업 현장에서 쓰이는 재료의 특성을 드러내며, 제작 과정에 얽힌 물질과 노동의 문제를 살핀다.
이 밖에도 레나 부이는 탁본 드로잉과 실크 페인팅, 조각으로 역사·기억·생태가 만나는 풍경을 만들고, 엘리아 누르비스타는 팜유 산업과 세계 경제, 노동과 환경의 관계를 다룬다.
전시는 야외 공간에서도 이어진다.
홍애린의 사운드 설치 '뮤직 사이렌(듀엣)'은 생명을 흉내 내는 장난감과 기계 장치가 만들어내는 뜻밖의 연주를 들려준다.
나무 정원에 놓인 유리 진열장 안에는 살아 있는 나비를 본뜬 장난감 나비 두 마리가 들어 있다. 모터로 나비가 날갯짓하면 적외선 센서가 이를 감지하고, 반사된 빛의 진동이 장치를 거쳐 피아노 소리로 바뀐다. 한 마리는 높은음을, 다른 한 마리는 낮은음을 내며 우연한 화음을 만든다.
일본 작가 그룹 사이드 코어의 '타임 게이트'는 일본의 시간제 주차장 간판과 차단기, 노면 표시를 재조립해 만든 거대한 문 형태의 구조물을 선보인다. 레이첼 윤은 실제 나무 사이에 머리 부분이 계속 회전하는 인공 야자수를 만들었다.
호암미술관 측은 "신진 작가의 발굴이라는 아트스펙트럼의 기존 틀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 '아시아'라는 범주 안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사회적 배경과 예술적 실천을 어떻게 함께 바라볼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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