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과 비극의 더블 빌로 조명한 인간의 욕망

솔오페라단 '스페인의 시계' 국내 초연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권지현

| 2026-07-05 11:19:34

▲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시칠리아 부활절 전례행렬 합창 장면 [솔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오페라 '스페인의 시계'의 콘셉시온과 은행장 [솔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오페라 '스페인의 시계' [솔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솔오페라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희극과 비극의 더블 빌로 조명한 인간의 욕망

솔오페라단 '스페인의 시계' 국내 초연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짧은 오페라 두 편을 묶어 더블 빌(두 개의 작품을 같이 공연)로 공연할 때는 얼마든지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를 묶거나, 이 중 한 편과 푸치니의 '외투'를 묶는 등 베리스모 오페라(가난한 농어민 또는 노동자들의 힘겨운 삶을 극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한 19세기 말~20세기 초 이탈리아 오페라)의 더블 빌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솔오페라단 이소영 단장은 창단 20주년 기념 무대로 모리스 라벨의 단막 희극오페라 '스페인의 시계'(L'heure espagnole·1911년 초연)와 마스카니의 단막 비극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묶어 공연하는 의외의 선택을 했다.

보통 '스페인의 시간' 또는 '스페인의 한때'로 번역되는 이 작품은 섬세하고 치밀한 음악적 유머로 유명한 오페라여서, 지난 3일 저녁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펼쳐진 국내 초연은 각별히 반가운 공연이었다.

시계 제작과 수리에만 온종일 몰두하는 18세기 톨레도의 시계장인 토르케마다는 미모의 젊은 아내 콘셉시온에겐 관심이 없다. 이 아내와 사랑을 나누려는 시인과 은행장이 차례로 집에 찾아오지만, 시계를 고치러 왔던 노새몰이꾼이 결국 콘셉시온의 사랑을 차지하는 최후의 승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커다란 괘종시계에 몸을 숨기는 연인들과 그 시계를 위아래 층으로 운반하는 힘센 노새몰이꾼의 숨바꼭질, 그리고 대본의 유머러스한 중의적 표현들이 관객에게 시종 웃음을 선사했다.

라벨 특유의 세련된 관현악 위에 하프, 실로폰, 차임, 그리고 다양한 타악기들이 겹쳐 입체적인 시계 소리를 완성했고, 괘종시계 추가 울리고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무대 위 수많은 시계 모형 및 시계 프로젝션 영상과 결합해 관객을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목관악기와 타악기들이 각자의 짧은 리듬을 서로 주고받는 음악적 구조 때문에 작은 어긋남도 투명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지만, 지휘자 홍석원의 노련하고 빈틈없는 지휘는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서 최상의 정밀함을 이끌어냈다.

박자가 수시로 바뀌는 어려움도, 정확한 타이밍의 시계음악 파트와 '읊조리듯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성악 파트의 상이한 층위도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흐트러짐 없이 유연하게 장악해갔다.

콘셉시온 역의 메조소프라노 아나 빅토리아 피츠의 풍성한 중저음역과 매혹적인 연기가 극의 몰입도를 높였고, 토르케마다 역의 오상택, 노새몰이꾼 라미로 역의 최윤성, 시인 연인 곤살베 역의 전병호, 은행장 돈 이니고 고메스 역의 이대범 등 모두의 뛰어난 가창과 연기 앙상블이 관객에게 큰 즐거움을 줬다.

연출가 김숙영은 오페라극장의 회전무대를 하나의 거대한 기계장치로 설정하고 그 회전으로 시간의 흐름을 상징했다. 전체적인 무대 배치 및 등장인물들이 일렬로 트랙 위를 흘러가는 장면 등은 1987년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의 '스페인의 시간' 연출을 참고한 것으로 보였다.

인터미션 이후 이 무대는 실내공간에서 광장공간으로 확장되며, 가벼운 희극에서 무거운 비극으로 분위기 역시 바뀌었다. 두 편의 스토리가 모두 욕망과 배신을 다루고 있지만, 바라보는 관점과 시각에 따라 그것들이 얼마나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시칠리아 부활절의 배신과 복수극을 다룬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약혼녀를 배신하고 과거의 연인 롤라와 다시 사랑에 빠진 투릿두, 그리고 투릿두의 사랑을 되찾으려고 애원하다가 절망 속에서 롤라의 남편 알피오에게 진실을 알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 산투차는 '스페인의 시계' 등장인물들의 대척점에 서 있다.

테너 국윤종과 소프라노 임세경이 펼친 이 두 주인공의 폭발적인 가창과 연기 대결은 베리스모의 본령을 극대화한 역대급 장면이었다.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의 극적 긴장감은 바리톤 스타브로스 만티스가 연기한 알피오에게 임세경이 롤라와 투릿두의 불륜을 알리는 장면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마에스타오페라합창단, 마에스타늘여울합창단, 리틀엔젤스콰이어가 세심하고 활기차게 연출된 군중장면에 설득력 있는 가창과 연기를 더했다. 공연은 5일까지.

rosina03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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