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인간방패, 이스라엘부터 이란까지

김재현

| 2026-04-09 07:45:01

▲ 이란 서남부 후제스탄 아흐바즈의 다리에 모인 시민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시간들] 인간방패, 이스라엘부터 이란까지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서기 70년, 로마군은 예루살렘 성벽 앞에 유대인 주민들을 세웠다. 성 안에서 화살을 쏘면 동족이 죽고 쏘지 않으면 성이 무너지는, 상대의 선택지를 지워버리는 전술이었다.

로마군은 동족을 바라보며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포로들을 십자가형에 처했다. 예루살렘은 결국 3개월 만에 함락됐고, 유대인들은 로마의 포로가 돼 노예로 팔리거나 각지로 흩어졌다.

13세기 몽골군도 포로를 선봉에 내세웠다. 항복을 거부한 도시에서는 조각 낸 포로를 성벽 아래 전시하며 공포를 극대화했다. 바그다드가 함락된 날 칼리프와 그의 아들들은 양탄자 안에 들어가 말발굽에 짓밟혀 죽었다. 저항하는 도시마다 포로를 무기로 동원해 사람의 씨를 말린 몽골군의 악명은 유럽 정복전에서 위력을 떨쳤다.

▷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방패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2차 대전 때 나치 독일은 점령지 민간인을 방어망으로 활용해 연합군의 공세를 꺾으려 했다. 냉전 이후에도 민간인을 전선에 가둬 공격을 막는 방식은 반복됐다. 1990년대 초 보스니아 전쟁에서 세르비아계 무장세력은 사라예보의 민간인을 전선의 한복판에 넣어 도시 전체를 인간 방패로 삼았다.

무기가 첨단화될수록 인간방패의 유혹은 오히려 커졌다. 하마스는 조직의 생존을 위해 병원과 학교 지하에 지휘소를 두는 전법을 고수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어린이들은 무고한 피해자가 됐고, 하마스는 이를 저항의 서사로 만들어 대내외 여론전에 활용한다.

▷ 지금 이란에서도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의 인프라 폭격 위협이 고조되자 이란 정부는 발전소와 교량 앞에서 민간인이 손을 맞잡고 서는 인간 사슬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까지 동원됐다는 점에서, 그것은 자발적 저항과는 거리가 멀다.

이 사슬 뒤에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총칼로 짓밟아온 정권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자리를 뒤집으려는 의도가 있다. 국제사회가 트럼프를 전범으로 몰아세우고 이란과 미국이 휴전에 동의하면서, 이란의 인간방패 전술은 일단 성과를 거둔 듯한 모양새다.

예루살렘 성벽 아래에서 오늘의 이란 발전소 앞까지, 인간 방패의 역사는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은 또다시 반복된다. 전선 앞에 사람을 세우는 전술은 어떤 명분을 갖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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