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
| 2021-08-10 11:14:38
함평 신덕고분 발굴 30년만에 보고서…"주인은 여전히 미궁"
국립광주박물관 발간…1호분에 왜·백제·토착 세력 영향 혼재
한때 '임나일본부설' 근거 우려도…"학계 논의 활발해지길"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일본의 옛 무덤 양식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앞은 네모지고 뒤는 둥근 무덤)과 매우 유사한 전남 함평 신덕고분의 조사 보고서가 발굴 30년 만에 발간된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신덕 1호분과 2호분 축조 양식과 출토품 정보를 담은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보고서를 이달 하순에 펴낸다고 10일 밝혔다.
보고서는 신덕 1호분과 2호분 위치·자연환경·조사 경위를 설명하고 무덤 내부 구조와 유물을 풍부한 사진과 함께 상세히 소개했다. 한국 학자 6명과 일본 연구자 3명이 쓴 논고도 게재했다.
6세기 초반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덕 1호분은 국립광주박물관이 1991년 3월 실측조사를 하다 도굴 구멍이 있음을 확인하고 그해 여름에 발굴조사를 시작했다. 박물관은 2000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조사를 시행했으나, 정식 학술 발굴조사 보고서를 펴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시신을 묻는 봉분 주변은 둥글게 쌓고, 앞에 사각형 단을 마련한 무덤 형태에 있었다. 이러한 무덤은 일본 곳곳에 많다. 일례가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오사카의 '모즈 후루이치 고분군'이다.
전방후원분이나 전방후원형 고분, 전통악기 장구와 닮아 '장고분'이라고도 하는 무덤은 신덕고분 발굴 전후에 영산강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됐는데, 한편에서 이 고분들이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 근거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10여 곳에 불과한 전방후원분을 바탕으로 일본이 호남 지역을 점유했다는 시각은 합리적이지 않으며, 이 지역이 왜와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가 힘을 얻었다.
김낙중 전북대 교수는 보고서에서 신덕 1호분에 대해 "무덤 형태와 매장시설로 보면 왜 규슈 세력과 관계가 깊은 상황에서 축조됐지만, 관대나 관고리가 부착된 목관에서는 백제 영향도 확인된다"면서 무덤 주변 도랑 형태, 돌 뚜껑을 덮은 무덤길의 항아리 등을 근거로 현지 토착 세력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다카타 간타(高田貫太)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교수는 신덕 1호분에서 나온 마구 세트, 구슬과 시신 안치 방식은 백제계 속성이지만, 관과 삼각형 철모는 왜와 백제 요소가 섞여 있다고 설명했다.
또 신덕 1호분에서 발견된 구슬이 피장자 위계가 상당히 높았음을 알려주는 유물로 백제를 통해 입수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고, 목관 재질은 무령왕릉과 같은 일본 특산 나무인 금송이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현재 호남 지역 전방후원분은 12곳에 14기가 산재한다고 알려졌으며, 축조 시기는 모두 5세기 후반∼6세기 초반으로 짐작된다.
무덤에 묻힌 주인공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크게 토착 세력 출신이라는 설과 왜인이라는 설로 나뉜다. 왜인이라고 해도 백제가 파견했거나 왜에서 망명한 인물이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게다가 각각의 무덤에 잠든 사람의 성격이 달랐을 가능성도 있어 피장자 신분을 일률적으로 정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번 보고서도 신덕 1호분을 조성한 세력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 피장자 출신지와 신분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경도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신덕고분은 심하게 도굴됐던 대부분의 전방후원형 고분과 달리 유물 구성을 온전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사례여서 학계의 관심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조사 결과를 보면 왜, 백제, 토착 세력의 흔적이 두루 나타나 무덤을 쌓은 집단과 피장자를 단정하기는 아직 어렵다"며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학계에서 신덕고분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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