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레저] 30년 된 호텔을 다시 살린 건축의 힘

간삼건축, 쉐라톤 제주에 혼을 불어넣다

성연재

| 2026-09-21 10:50:26

▲ 제주 바다와 맞닿아 새롭게 조성한 100m 규모의 인피니티풀. 객실에 집중돼 있던 오션프런트 경험을 호텔의 공용공간과 체류 과정 전반으로 확장했다. [간삼건축 제공]

(서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30년 넘은 호텔을 다시 살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낡은 것을 모두 걷어내고 새로 만들기가 가장 쉬운 답일 수 있다.

그러나 제주 탑동 해안에 다시 문을 연 쉐라톤 제주는 다른 길을 택했다.

30여 년 전 건축의 장점은 남기고, 달라진 제주와 여행객의 시선을 새롭게 끌어들였다.

이 호텔의 처음과 지금을 모두 설계한 곳은 간삼건축이다.

간삼건축은 1994년 이곳에 호텔을 처음 설계한 데 이어 30여 년 만에 다시 리모델링 설계를 맡았다.

1994년 제주 북쪽 해안은 지금보다 거친 공간이었다.

강한 바람과 파도, 잦은 월파를 견뎌야 했다.

당시 설계진은 바다보다 건물 안쪽에 집중했다.

길이 200여m 건물 중앙에 거대한 아트리움을 만들고 객실과 각종 시설을 그 주변에 배치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도 호텔 안에서 식사하고 쉬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종의 '실내 도시'였다.

30년이 지나면서 조건은 달라졌다.

탑동 해안에는 2020년 약 1.1㎞ 길이의 방파제가 들어섰고 제주를 여행하는 방식도 단체관광에서 개별여행 중심으로 바뀌었다.

제주를 찾는 관광객의 여행 방식 역시 변화했다.

과거 단체관광과 MICE 수요가 주요 시장이었다면 오늘날 제주 관광은 개별여행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제주관광공사의 '2025년 제주 방문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제주를 찾은 내국인의 96.8%, 외국인의 91.9%가 개별여행 형태로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텔에서 잠만 자던 시대에서 호텔 자체를 여행의 일부로 즐기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번 리모델링의 핵심은 이 변화에 맞춰 건물의 시선을 돌리는 데 있었다.

기존 아트리움은 그대로 살렸다.

대신 안으로 향했던 공간을 바다 쪽으로 열었다.

객실에서만 누리던 오션뷰를 로비와 라운지, 다이닝 등 호텔 곳곳으로 끌어들였다.

바다와 맞닿은 100m 규모의 인피니티풀도 새로 만들었다.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쉬고, 먹고, 수영하는 시간까지 제주 바다가 따라다니도록 한 셈이다.

1994년의 호텔이 거친 제주 날씨를 피해 안쪽으로 공간을 모았다면, 2026년의 호텔은 오히려 바다를 적극적으로 끌어안았다.

30년 전 설계를 부수지 않고 시대에 맞게 방향을 바꿨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대신 기존 건물이 가진 구조와 기억을 남기면서 공간의 쓰임을 바꿨다.

이효상 간삼건축 건축가는 "좋은 리모델링은 기존 건축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유효한 가치를 골라 다음 시대와 연결하는 작업"이라며 "기존 아트리움 중심 구조를 계승하면서 제주 바다를 호텔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공용공간과 체류 동선을 새롭게 연결했다"고 설명했다.

건물은 그대로지만 호텔을 경험하는 방식은 달라졌다.

쉐라톤 제주는 오래된 호텔을 새 호텔처럼 만드는 힘이 꼭 철거와 신축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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