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녹인 '겨울나그네'…슈베르트의 고독을 노래하다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피아니스트 선우예권 호흡

조윤희

| 2026-06-22 10:40:44

▲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 [한세예스24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 [한세예스24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한세예스24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 [한세예스24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여름밤 녹인 '겨울나그네'…슈베르트의 고독을 노래하다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피아니스트 선우예권 호흡

(서울=연합뉴스) 조윤희 기자 = 차가운 침묵 끝에 건반에서 첫 음이 울리자 무대는 한순간에 시린 겨울의 한복판으로 변했다.

읊조리듯 시작된 노래가 공연장의 공기를 감싸 안자 관객들은 숨죽인 채 두 아티스트가 빚어내는 깊은 고독의 여정에 동행했다.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호흡을 맞춘 한세예스24문화재단의 '2026 여름에 듣는 겨울나그네' 공연이 지난 2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올랐다.

이날 공연된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는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연가곡(완결된 서사를 가진 가곡)이다.

실연의 아픔을 안고 홀로 길을 떠나는 방랑자의 내면을 그린 이 작품은 인간이 마주하는 근원적인 상실감과 체념을 점층적으로 그려낸 것이 특징이다.

총 24곡의 서사 속에서 마티아스 괴르네는 단순히 노래를 가창하는 것을 넘어, 마치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어 놓듯 절절한 감정을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했다.

괴르네에게 슈베르트 가곡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는 과거 영국의 클래식 음반 레이블 하이페리온의 '슈베르트 에디션'에 참여해 그중 '겨울나그네' 음반으로 1997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베스트 음반'에 오르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다졌다.

내한 무대에서도 2006년부터 세 차례나 '겨울나그네'를 선보였던 그는 한층 더 깊어진 해석으로 청중을 압도했다.

선우예권의 피아노는 단순한 반주의 경계를 넘어 노래와 완벽하게 대등함을 이뤘다.

그는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나타나는 고유의 감정선을 이어받으며, 무대에 몰입한 표정과 손끝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선율로 방랑자의 심리를 전달했다. 특히 노래하는 이가 마주하는 슬픔과 절망을 규칙적인 피아노 리듬으로 짚어내며 극적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평소 슈베르트를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로 꼽아온 선우예권은 베이스 연광철(2016년), 테너 김세일(2022년)에 이어 이번까지 세 차례 '겨울나그네'를 협연하며 슈베르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줬다.

'겨울나그네'의 서사는 크게 세 줄기로 나뉘며 관객들을 몰입시켰다.

거절당한 사랑의 슬픔과 겨울 풍경 속에서 방랑의 시작을 알린 뒤, 끝내 좌절되고 마는 희망을 거쳐 극한의 고독과 마주했다. 두 아티스트는 주인공의 감정 변화를 밀도 높은 눈빛과 하나 된 호흡으로 표현해냈다.

본 공연의 묵직한 여운이 가신 뒤에는 세 곡의 앙코르 무대가 이어지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그중 한국 관객만을 위해 준비한 이흥렬의 '섬집아기'가 울려 퍼지는 순간 객석에선 환호와 미소가 터져 나왔다.

손에 노트를 든 채 진심을 담아 '섬집아기'를 부르는 괴르네의 깊은 목소리는 본 공연의 시린 감성과는 다른 따뜻한 울림을 선사했다.

모든 연주가 끝난 후, 괴르네는 함께 무대를 빛낸 선우예권의 손을 꼭 맞잡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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