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호
| 2026-06-09 08:52:01
콜롬비아 대선에 등장한 '오빠'·'K팝'…K컬처가 필승 전략(?)
좌파 여당후보 세페다와 지지자들, 대선 승리 위해 K컬처 동원
"K팝은 태생적으로 사회적 투쟁·메시지 전달과 연결…비정치적 아냐"
우파는 월드컵, 인플루언서 등 활용…K컬처의 정치적 영향력 '주목'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선거철이 되면 후보의 경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홍보 전략이 등장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선동가였던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의 스타성 못지않게, 요제프 괴벨스라는 탁월한 홍보전략가 덕도 톡톡히 봤다. 나치당의 선전부장 괴벨스는 치밀한 무대 장치와 극적인 영상, 감각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활용해 히틀러를 대중의 우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히틀러 이후 현대 선거에서 후보의 '이미지 메이킹'은 승패를 가르는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지금 콜롬비아 대통령 선거에서 등장한 핵심 전략은 단연 한국의 문화 콘텐츠, 'K컬처'다.
오는 6월21일 열리는 대선 결선투표에 안착한 여당 후보 이반 세페다(64)는 '뼛속까지 사회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대통령을 꿈꿨던 암살당한 좌파 지도자 마누엘 세페다의 아들인 그는 젊은 시절 공산권 나라들을 주유했다. 이제 집권 여당이자 좌파 정당의 대선후보가 된 세페다는 빈민에게 농장을 나눠주고, 사회적 지출을 대폭 늘리며 좌파 반군들과도 협상하겠다는 전통적인 좌파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하다 1차 대선 투표에서 예상 밖의 일격(2위)을 당하자, 전통적인 사회주의 이론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문화를 중시한 이탈리아 사회주의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다. 그람시의 이론에 정통한 세페다는 문화의 파급력을 잘 이해하는 정치인답게 주도권을 다시 빼앗아 오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K컬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남미 지역에서 K컬처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를 기준으로 남미 전역에서 한국 드라마는 톱10 순위에 2~3편씩 이름을 올린다. 세페다가 극우파 후보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야(48)와 박빙의 격전을 치르고 있는 콜롬비아도 예외는 아니다.
8일(현지시간) 스트리밍 순위 집계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콜롬비아 넷플릭스 TV쇼 부문에 한국 드라마 세 편이 동시에 포진하며 현지 안방극장을 점령하고 있다. '참교육'이 4위, '멋진 신세계'가 5위, '오늘도 매진했습니다'가 9위다.
드라마보다 먼저 뿌리내린 K팝의 열기는 더 뜨겁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스트레이 키즈, 에이티즈 등이 주류 문화로 안착하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같은 K컬처 인기를 주목한 세페다 후보 측은 선거운동의 '전위부대'로 K컬처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세페다의 근엄한 얼굴 주변에 반짝이 효과와 하트 필터, 파스텔톤 배경을 덧입혀 마치 'K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연출한 뒤, 한국어로 '오빠'(OPPA), '사랑해' 같은 문구를 얹은 밈을 제작해 유튜브와 틱톡에 배포하고 있다. 세페다 본인도 유세 현장에서 틈만 나면 한국에서 유행한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이러한 청년층의 코드에 화답하고 있다.
이런 운동의 중심에는 세페다 지지자 모임인 '역사적 조약을 위한 K팝 팬 운동'(Movimiento Kpopers por el Pacto Historico)이 있다. 이들은 세페다의 복잡한 공약을 저연령층의 눈높이에 맞춰 카드뉴스로 쉽게 풀어내거나, K팝 아이돌의 세련된 음악을 깔고 후보의 무상교육 정책을 홍보하는 숏폼 영상을 제작해 바이럴(입소문)을 주도하고 있다.
이 운동을 주도하는 영상제작자 헤네시스 메사(30)는 최근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와의 인터뷰에서 K팝을 정치에 활용하는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그룹 에이티즈의 '게릴라'는 우리가 직면한 억압과 장벽을 무너뜨리자는 저항을 다루고, BTS의 '뱁새'는 기성 사회가 청년들에게 강요하는 메커니즘과 불평등한 저임금 구조를 날카롭게 꼬집는다"며 "K팝은 태생적으로 사회적 투쟁 및 메시지 전달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K팝이 비정치적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거짓"이라고 강조했다. K팝의 저항 정신이 콜롬비아 청년들이 처한 현실적 결핍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콜롬비아 일간 엘 에스펙타도르도 8일 세페다가 경쟁자인 에스프리에야가 선점했던 온라인·디지털 격전지를 공략하기 위해 과거의 광장 유세 방식에서 탈피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전환했으며, 그 중심에 'K팝'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공지능(AI) 영상과 월드컵, 막강한 인플루언서 군단을 동원해 재미를 본 우파의 공세에 맞서, 가장 트렌디하고 결집력 높은 'K컬처 팬덤'을 활용해 좌파 후보가 반격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콜롬비아 대선에 '깜짝' 등장한 'K컬처'가 좌파 후보의 회생 카드가 될 수 있을까. 최근 중남미 전역에 우파 집권 기류인 '블루타이드'가 거센 가운데, K컬처가 빚어낸 독특한 팬덤 정치가 콜롬비아 대선의 향방을 가를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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