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래
| 2026-09-29 10:37:13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겨울 새벽 눈이 내린 마을. 기와지붕마다 소복이 내려앉은 흰 눈이 어둑한 풍경 속에서 은은한 결을 드러낸다.
가까이 다가가면 눈처럼 보이던 흰 화면이 잘게 깬 계란껍질 조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란껍질을 붙이고 옻칠로 마감한 난각 기법이 겨울 지붕의 차갑고도 포근한 질감을 빚어낸다.
밤 풍경을 담은 또 다른 작품에선 집마다 불이 켜져 있다. 어둠 속 마을 한가운데에는 자개로 표현한 강이 흐른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자개의 강은 실제 풍경의 물길이면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속 보금자리로 향하는 길처럼 보인다.
옻칠 화가 박지은의 개인전 '텅에(Nest)'가 다음 달 7일부터 서울 삼청동 갤러리진선에서 열린다. 전시 제목인 '텅에'는 새 둥지 또는 보금자리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작가는 현대인이 마음속에 품는 정서적·심리적 보금자리를 풍경으로 풀어낸다.
박지은은 옻칠과 계란껍질 등 자연 재료를 바탕으로 화면을 구축한다. 계란껍질은 생명을 감싸는 껍질이자 둥지로 작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풍경 작품 25점을 선보인다.
작품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기와지붕과 가옥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기억과 정서가 머무는 장소다. 박지은이 말하는 보금자리는 물리적인 집에 한정되지 않는다. 편히 쉴 수 있는 곳, 돌아가고 싶은 곳, 상상 속 이상향까지 아우르는 심리적 공간이다.
동덕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박지은은 지필묵을 중심으로 동양적 조형 언어를 탐구해오다 2008년 옻칠 기법을 접한 뒤 작업 세계를 넓혀왔다.
우진문화재단 청년작가, 가송문화재단 작가, 이랜드문화재단 작가 등에 선정됐으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전라북도립미술관, 포스코 등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10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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