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
| 2026-04-27 10:37:45
두 대의 피아노, 55년의 호흡…라베크 자매 하모니에 기립박수
LG아트센터에 울려퍼진 '장 콕토 3부작'…필립 글래스 대표작 선보여
(서울=연합뉴스) 조윤희 기자 = 어둠 속에서 낮게 깔리는 목소리가 공연장의 공기를 바꿨다.
영화감독 장 콕토의 내레이션이 흐르자 무대 양 끝에서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걸어 나와 각자의 피아노 앞에 앉았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노 듀오, 카티아 라베크(76)와 마리엘 라베크(74) 자매가 관객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지난 26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LG시그니처홀에서 열린 '라베크 자매 투 피아노(Two Pianos)' 공연은 필립 글래스의 '장 콕토 3부작'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이번 공연은 2024년 3월 필하모니 드 파리에서 초연한 뒤 이어진 월드 투어의 일환으로, 무대 디자인과 연출 모두 초연 당시 구성을 그대로 가져왔다.
'장 콕토 3부작'은 필립 글래스가 장 콕토의 작품 '오르페', '미녀와 야수', '앙팡테리블'을 바탕으로 작곡한 오페라들을 두 대의 피아노 버전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성악가 대신 피아노가 그 '목소리'를 대신하며 오케스트라보다 자유로운 템포와 정교한 표현력으로 관객들을 콕토의 세계로 안내했다.
무대 위 시각적 연출은 연주의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무대 중앙에 매달린 20개의 LED 전등으로 구성된 샹들리에는 연주에 맞춰 빛의 밝기와 색을 달리했다. 하얗고 노란빛이 때로는 붉게 변하며 무대를 물들였고, 샹들리에가 무대 뒷벽에 비쳐 만들어낸 그림자는 마치 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이 교차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1968년부터 피아노 듀오로 활동하며 1970년 첫 앨범을 발매해 올해 데뷔 55주년을 맞은 자매는 반세기 넘게 쌓아온 세월을 증명하듯 무대 위에서 완벽한 호흡을 보여줬다.
자매지만 연주에 있어서는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대비됐다. 언니 카티아는 연주가 정점으로 향할 때마다 격렬하게 몸을 쓰며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냈고, 동생 마리엘은 차분하고 묵직한 연주로 카티아의 선율을 뒷받침하며 조화롭게 스며들었다.
고음역의 화려함과 저음역의 묵직함을 짚어내는 자매의 연주는 필립 글래스 특유의 반복적인 선율 속에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낭만적 색채를 끄집어냈다.
공연은 3부 '앙팡테리블'로 향하며 절정을 맞았다. 두 연주자가 순백의 의상으로 갈아입고 무대에 오르는 순간, 샹들리에가 강렬한 붉은 빛을 뿜으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고, 자매는 손을 맞잡고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본 공연 뒤에도 라베크 자매는 두 곡의 앙코르로 화답했다. 첫 곡은 그들이 2013년 앨범에 수록하며 필립 글래스와의 인연을 본격적으로 맺게 해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4개의 악장' 중 제4곡이었다.
마지막 무대에서 자매는 한 대의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모리스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 중 제5곡 '요정의 정원'을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연주'(4 Hands)로 들려줬다.
하나의 건반 위에서 자매의 손길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긴 세월을 함께해온 파트너십의 정점을 보여줬다. 관객들은 "공연의 완벽한 마지막"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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