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빛, 유화로 옮긴 '색채의 마법사'…이대원의 70년 화업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서 대규모 회고전…'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농원' 연작·5m 대작 '담' 등 유화 120여 점·아카이브 100여 점 선보여

박의래

| 2026-08-05 10:30:01

▲ 이대원 회고전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대원 회고전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대원 1938년 작 '북한산'
▲ 이대원 1979년 작 '농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대원 1986년 작 '담'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대원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이대원(1921∼2005)은 한국 근현대미술에서 가장 환한 색채로 기억되는 화가다.

과수원과 산, 연못을 원색의 점과 선으로 채운 그의 화면은 '색채의 마법사', '화단의 신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화가'라는 수식어와 함께 알려져 왔다.

그러나 그 밝음은 단순한 낙천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자수와 나전, 화각, 목가구 같은 한국 전통 공예의 색과 빛, 동양화의 운필과 조형 원리를 오래 연구하고 이를 유화의 언어로 옮긴 끝에 도달한 성취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대원의 약 70년 화업을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를 오는 6일부터 11월 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연다.

1930년대 초기작부터 말년의 대형 회화까지 유화 120여 점을 선보인다. '밝은 화가'라는 이미지 너머, 전통과 현대, 공예와 회화, 풍경과 산수를 잇는 이대원의 세계를 새롭게 만날 수 있다.

여기에 아카이브 100여 점과 작가 수집 고미술품 등을 통해 이대원을 단순한 풍경화가가 아니라 한국적인 현대 회화의 가능성을 평생 탐구한 문화적 지식인으로 다시 바라본다.

초기작 '북한산'은 북한산의 지형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가을 산의 인상을 색채로 재구성한다.

백운대와 인수봉의 흰 화강암 봉우리는 진홍과 자주로 바뀌고, 짙푸른 하늘과 강하게 대비된다. 대상의 고유색을 따르지 않고 계절의 감각을 화면의 구조로 삼은 이 작품은 훗날 이대원 회화에서 중요해질 색채 실험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본래 제목이 '가을 산'이었음이 새롭게 확인됐다.

이대원의 대표적 회화 세계는 1970년대 이후 본격화한 '농원' 연작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는 파주 농원에 화실을 마련한 뒤 수십 년 동안 같은 장소를 반복해 그렸다. 그러나 그의 농원은 매번 다른 풍경으로 나타난다.

봄의 꽃나무, 가을의 들판, 산과 하늘은 색점과 색선, 색면으로 촘촘히 쌓이며 계절과 빛, 시간의 감각을 품는다. 이대원의 색점은 서양 점묘법처럼 관람자의 눈에서 섞여 보이도록 한 기법이 아니다. 자수의 색실처럼 각각의 색이 고유한 빛을 유지한 채 화면 위에 축적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짧은 색점은 길고 자유로운 색선으로 확장되고, 풍경의 원근은 점차 희미해진다. 그의 화면은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을 넘어, 관람자가 그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산수적 공간으로 변한다.

대작 '담'은 이대원이 축적해 온 색채 언어가 대형 화면에서 펼쳐진 작품이다. 가로 5m가 넘는 이 작품은 흰 담과 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을 담고 있다.

멀리서 보면 평온한 정경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흰 담은 단일한 흰색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미색과 분홍빛, 푸른빛이 감도는 여러 색이 서로 섞이지 않은 채 나란히 놓이고, 각각의 색은 독립적인 발색을 유지한다. 어두운 옻칠 바탕에 박힌 자개가 제각기 빛을 내듯, 화면의 색들은 깊이 있는 표면을 이루며 조용히 반짝인다.

외교부가 소장한 이 작품은 오랜 시간 주미한국대사관에 설치돼 한국 회화의 고유한 미감을 전해 왔다.

이대원은 화가이면서 동시에 한국 미술계의 기반을 만든 인물이기도 했다. 1959년부터 약 8년간 한국 최초의 상업 화랑 격인 반도화랑을 운영하며 박수근, 장욱진, 김기창, 김환기, 유영국 등의 작품을 소개했고, 한국 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와 학장, 총장을 지내며 미술교육의 토대를 다졌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과 외교통상부 문화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창작과 교육, 전시, 문화행정과 외교가 그의 삶 안에서 분리되지 않았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대원은 한국 미술을 전시하고 가르치며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문화적 지식인이자, 자신의 회화에서는 한국적인 현대 회화의 가능성을 평생에 걸쳐 탐구한 화가"라며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던 이대원의 위상을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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