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
| 2026-05-15 10:25:59
내면의 소란 비우자 차오른 생명력…대나무숲에서 만난 발레
서울시발레단 두 번째 전막 창작 신작 '인 더 뱀부 포레스트'
15∼17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한국적 미학 담은 K-컨템퍼러리 발레
(서울=연합뉴스) 조윤희 기자 = 스포트라이트 아래 홀로 선 인물은 자신을 집어삼킬 듯한 내면의 소란을 걷어낸다. 혼란으로 황폐해졌던 마음의 빈자리에는 대나무 숲의 싱그러운 생명력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혼란에 휩싸여 바닥에 주저앉았던 몸짓은 숲의 바람과 하나가 되며 어느새 대나무처럼 곧고 유연한 강인함을 얻는다.
공연 개막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서울시발레단 '인 더 뱀부 포레스트'(In the Bamboo Forest) 프레스콜에서는 한국적 미학과 컨템퍼러리 발레가 교감하며 뿜어내는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은 현대사회에서 혼란을 겪는 인물이 대나무 숲이란 자연 공간으로 들어가 비움과 뿌리내림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그렸다.
안무를 맡은 강효형은 "대나무가 지닌 사계절의 푸르름과 그 정기를 관객분들에게 어떻게 힐링으로 전해드릴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한 작품"이라며 "보시면서 에너지와 힐링을 함께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프롤로그에서 어두운 무대 위 단 하나의 조명 아래 선 이유범 무용수는 어두운 의상을 입고 거칠게 부딪히는 무용수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의 내면을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이어지는 1장 '숲에 들어서다'에선 분위기가 반전됐다.
바닥에 누워 숨을 고르는 인물 주변으로 시원한 대나무 숲이 펼쳐졌다.
바람을 형상화한 듯 하얗고 휘날리는 의상을 입은 여성 무용수가 남성 무용수의 손길을 타고 공중으로 솟구칠 때, 그 움직임은 마치 숲을 가로지르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처럼 가볍고 경쾌했다.
작품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은 단연 대나무의 특성을 신체로 형상화한 2장 '죽(竹), 유연하면서도 굳건한'이었다.
무대 위에 솟은 대나무 오브제 옆에서 최목린을 중심으로 여성 무용수들은 음악의 박자에 맞춰 절도 있게 몸을 꺾으면서도, 동작과 동작 사이를 부드럽게 잇는 유연함을 보여줬다.
주목할 점은 무용수들의 '호흡'이다.
무대 위에서 들이마시고 내뱉는 숨소리가 객석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며 대나무 숲의 정취 속에서 함께 숨을 고르게 했다.
이는 강효형 안무가 특유의 한국적 선과 호흡이 컨템퍼러리 발레와 조화롭게 어우러진 결과다.
4장 '뿌리내림 그리고 성장'으로 넘어가며 남성 무용수들의 강렬한 군무가 시선을 압도했다.
엄진솔을 필두로 한 무용수들은 대나무의 단단한 생명력을 폭발적인 에너지로 풀어내며 무대를 가득 채웠다.
작품 마무리에 이르러 초반의 혼란스러웠던 인물은 숲의 에너지를 흡수해 내면이 단단해진 상태로 다시 스포트라이트 아래 선다.
프롤로그와 같은 구도지만, 무용수의 얼굴에 깃든 평온함은 보는 이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했다.
음악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거문고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박다울은 거문고의 긴장감 있는 울림 위에 피아노, 기타 등 서양 악기를 결합해 독특한 사운드를 구축했다.
국악기 선율이 발레의 리듬과 이질감 없이 섞이며 'K-컨템퍼러리'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박다울 음악감독은 "'이 발레가 어떤 발레입니까'라고 사람들이 물어봤을 때 이 작품은 한국적인 발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작업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발레단의 두 번째 전막 창작 신작인 '인 더 뱀부 포레스트'는 이날부터 1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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