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재
| 2026-01-24 08:00:06
[길따라] 재주는 K-팝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아시아 국가, 대규모 공연장으로 K-팝 공연 유치…한국, 발동동
(서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최근 캐세이퍼시픽항공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카이탁 스타디움이 문을 연 뒤 승객 흐름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설명이었다.
K-팝과 글로벌 팝 공연이 잇따르면서, 공연 일정에 맞춰 홍콩을 찾는 수요가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다.
홍콩 주룽반도 옛 카이탁 국제공항 부지에 들어선 카이탁 스포츠 단지는 개폐식 지붕을 갖춘 최신 스타디움과 쇼핑몰, 호텔, 광장을 하나의 동선으로 묶은 복합 시설이다.
항공 수요 변화의 이유가 공연장 하나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이곳은 이번 달 블랙핑크의 대규모 공연을 시작으로 K-팝 투어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해오고 있다.
카이탁은 최대 5만 명을 수용하는 주 경기장과 1만 석 이상 규모의 실내 아레나를 동시에 갖췄고, 공항과 맞닿은 입지에 대중교통·숙박·상업시설을 결합했다.
공연 하나가 도시 전체의 체류 소비로 이어지도록 설계된 구조다.
좌석 수 5만5천명을 자랑하는 일본 도쿄돔은 자타공인 K-팝의 최고 성지로 등극한 지 오래다.
YG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걸그룹 블랙핑크는 지난 16∼18일 일본 도쿄돔에서 월드투어 '데드라인'(DEADLINE)을 열어 사흘간 16만5천명의 관객을 모았다.
이들 도시는 공연을 단순한 문화 이벤트가 아닌 관광산업으로 다루고 있다.
공연을 앞두고 일어나는 숙박료 바가지 문제보다, 어쩌면 인프라 문제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은 K-팝 종주국이지만, 인프라 경쟁에서는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잠실의 KSPO DOME, 고척스카이돔은 체육·야구 중심 설계로 음향과 무대 전환, 반복 공연 운영에서 한계가 지적돼 왔다.
KSPO 돔은 1만4천여명, 고척 스카이돔은 1만6천여명이 고작이다.
관중 4만여명은 넘어서야 무대 시설비와 출연료 등을 제외하고 어느 정도 수익을 남길 만하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서울 시내에 이만한 관객을 수용할 공간이 없자 가까운 고양종합경기장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4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경기장은 전용 아레나는 아니지만,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의 접근성, GTX-A 등 교통망, 정규리그 홈구장이 없어 대관 일정 확보가 수월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도 오는 4월 이곳에서 총 사흘간 '방탄소년단 월드투어 '아리랑' 인 고양' 공연을 펼친다.
서울의 경우 잠실종합경기장(올림픽주경기장) 리모델링 공사가 마무리되면 대형 공연 수용 여력은 일정 부분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서울시는 2023년 하반기 착공한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노후 시설을 전면 개선하고 있으며, 완공 목표 시점은 2026년 말이다.
관람석 교체와 트랙 개선, 전광판 확충, 보행광장 조성 등으로 국제대회와 대형 문화행사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도심형 복합공간으로 재구성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 역시 경쟁의 종착지는 아니다.
돔이 아니기 때문에 매서운 겨울 한파 속에서는 공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어를 유치하려는 경쟁은 이미 도시 간 전면전 양상을 보인다.
홍콩, 도쿄, 싱가포르, 방콕은 공연장을 중심으로 항공·숙박·쇼핑·관광을 묶는 구조를 선점했다.
한국은 뒤늦게 격차를 좁히는 국면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인프라 밀도에서는 차이가 난다.
대안으로는 서울 도봉구 창동에 건설 중인 서울 아레나(2만8천명)와 인천 청라국제도시에 세워지는 신세계의 돔구장(최대 2만5천∼2만8천명)이 거론된다.
두 시설 모두 공연장을 중심에 두고 도시 기능을 재편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이전과는 결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라는 인천공항을 끼고 있어, 아시아 각국의 팬들이 집결하기 좋은 위치인 데다 스타필드의 쇼핑 기능까지 묶여 관광 효과가 클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여기에 청라국제도시는 약 26만㎡ 부지에 숙박·콘텐츠·도시 기능을 함께 묶어 청라 I-CON City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하고 있다.
한 공연 업계 관계자는 "이제 경쟁은 아티스트가 아니라 도시 간 인프라 경쟁"이라며 "공연 한 회로 발생하는 이동·숙박·식음료 소비를 반복적으로 흡수할 수 있느냐가 승부를 가른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연예 업계 관계자는 "사실 카이탁이나 도쿄돔 같은 경우 어느 정도 내수 공연 규모가 뒷받침해주기 때문에 운영이 가능하다"면서 "지자체 등에서 선뜻 대규모 공연장 건립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끝)
[ⓒ K-VIB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