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
| 2021-10-20 10:24:52
갯벌서 해산물 잡는 전통기술 '갯벌어로', 무형문화재 된다
한반도 서·남해안서 널리 전승…보유자·보유단체는 인정 안 해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반도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맨손이나 도구로 조개나 굴, 낙지 등 해산물을 잡는 전통기술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우리나라 갯벌에서 패류와 연체류를 채취하는 어로 기술, 전통지식, 공동체 조직문화, 의례·의식을 아우르는 '갯벌어로'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고 20일 밝혔다.
수산물을 잡는 어로 방식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되기는 '어살'(漁箭)에 이어 두 번째다. 어살은 대나무 발을 치거나 돌을 쌓아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얻는 도구와 방법을 뜻한다.
다만 문화재청은 갯벌어로가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널리 전승되고 향유되는 문화라고 판단해 어살과 '김치 담그기', '장 담그기'처럼 특정 보유자와 보유단체는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갯벌은 예부터 다양한 해양생물이 살아가는 해산물의 보고여서 '바다의 밭'으로 인식됐고, 지금도 해안 마을이 어촌계를 중심으로 공동 관리하는 중요한 삶의 터전이다. 갯벌 중 일부는 도립공원이나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고, 지난 7월에는 서천·고창·신안·보성·순천 갯벌 일부가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갯벌어로는 해류, 조류, 지형, 지질에 따라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고운 흙·모래·자갈 등 갯벌 성분도 어로 도구와 방법에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펄갯벌에서는 뻘배를 이용했고, 모래갯벌에서는 긁게나 갈퀴를 썼다. 여러 성분이 섞인 혼합갯벌에서는 호미·가래·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활용했고, 자갈갯벌에 갈 때는 쇠로 만든 갈고리인 조새를 지참했다.
문헌에서 우리나라 갯벌어로 역사의 기원을 찾기는 어렵지만,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는 패총 유적이 많이 확인돼 오래전부터 한반도 주민들이 갯벌에서 조개를 잡았음을 알 수 있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패총은 조개껍데기가 쌓인 무더기를 뜻한다.
조선 후기 문인 정약전은 어류학서인 '자산어보'에 갯벌에서 나오는 조개와 연체류를 상세히 기록해 두기도 했다.
민간에서는 갯벌어로와 관련해 고유한 공동체 의례를 전승하기도 했다. 일례가 '조개 부르기'나 '굴 부르기' 등으로도 일컬어지는 '갯제'로, 마을 주민들이 해산물을 많이 수확하기를 기원하며 조개·굴을 인격화해 갯벌에 불러들이는 의식이다.
이 밖에도 풍어(豊漁)를 예측하는 '도깨비불 보기', 굴과 조개를 채취한 뒤 주민들이 함께 노는 '등바루놀이', 어장 고사인 '도깨비 고사'가 각지에서 이뤄졌다.
도깨비 고사는 어민들이 갯벌에서 바닷물이 빠질 때 나는 '뿅뿅' 소리를 도깨비가 걸어가면서 생기는 소리로 생각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어민들은 도깨비가 갯벌 어류를 관장한다고 짐작해 도깨비가 좋아한다는 메밀로 만든 메밀범벅이나 메밀묵을 고사상에 올렸다.
갯벌어로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어로 활동으로,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해산물을 채취하지 않는 금어기를 설정하고 치어를 방류하며 갯벌과 생물을 보존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갯벌어로에는 자연을 채취 대상이 아닌 인간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전통적 가치관이 투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갯벌어로를 종합적으로 살폈을 때 역사가 장구하고 여러 지역에서 이어지고 있으며, 다양한 어로 방식이 학술 연구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문화재 지정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 문헌에서 갯벌 해산물 관련 기록이 확인되고, 의례와 놀이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갯벌어로의 문화재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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