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싶은 길] 삼릉을 품은 비밀의 숲

이동경

| 2026-08-13 09:54:50

▲ 공릉[사진/임헌정 기자]
▲ 소나무 숲길[사진/임헌정 기자]
▲ 공릉[사진/임헌정 기자]
▲ 공릉의 개구리[사진/임헌정 기자]
▲ 긴꼬리 딱새[사진/임헌정 기자]


▲ 삼릉 연못[사진/임헌정 기자]
▲ 삼릉 숲길[사진/임헌정 기자]

(파주=연합뉴스) 이동경 기자 = 파주 삼릉은 조선왕조 왕실 가족의 능인 공릉과 순릉, 영릉이 모인 곳이다. 능침을 끼고, 능침 사이를 걷는 삼릉의 두 숲길은 봄, 가을 석 달 정도 문이 열린다. 완만한 경사의 흙길이면서 길지도 않다. 짧은 생을 마감한 조선 권신(權臣)의 딸들을 품고 있는 숲의 길이다.

◇ 남편 곁에 묻히지 못한 한명회의 두 딸

공릉에는 조선의 권력가 한명회의 셋째 딸인 장순왕후 한씨(1445∼1461)가 누워있다. 그는 열다섯 살에 당시 왕세자이던 예종의 세자빈으로 간택돼 왕실로 들어왔지만, 인성대군을 낳은 직후인 17살에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순릉은 성종의 첫 왕비이자 한명회의 둘째 딸인 공혜왕후(1456∼1474)의 능이다. 공혜왕후는 살아서 왕비의 자리에 올랐으나 혼인 후 건강이 좋지 않았고, 자녀를 낳지 못한 채 열아홉의 나이로 죽었다.

공릉과 순릉은 '자매 왕비의 능'이다. 자매가 모두 죽기 전후로 조선의 왕비가 됐고, 능은 같은 숲 안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드문 일이기도 하다. 당대 최고 세도가의 딸들이었지만, 모두 짧은 삶을 살았고 남편 곁에도 묻히지 못했다.

영릉은 부부인 효장세자(사후 진종 추존)와 효순왕후가 나란히 묻힌 쌍릉이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2019년부터 매년 봄·가을 조선왕릉 숲길을 공개하고 있다. 5월 중순 공개된 '영릉∼순릉 작은 연못길'과 '공릉 능침 북측 숲길'은 삼릉을 감싸고 있는 길이다. 산불에 따른 능 훼손 등을 예방하고 숲길을 보존하기 위해 봄철(5월 중순∼6월 말)과 가을철(10월 초∼11월 말) 두 기간에만 개방된다.

◇ 고요한 숲의 시작

폐쇄를 이틀 앞두고 두 숲길을 다녀왔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폭 2.5m 정도의 흙길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펼쳐진다.

입구 근처에 있는 재실을 지나 공릉으로 향하는 길을 녹음이 짙은 단풍나무 터널이 인도한다. 서너 달 지나면 붉은빛, 황금빛 자태를 뽐낼 단풍을 상상해본다.

처음 마주치는 숲은 생각보다 깊다. 울창하면서도 고요하다. 요란하지 않은 새들의 지저귐이 있어 더욱 고요하게 느껴진다. 능선을 따라 곧게 뻗은 소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그늘을 만든다. 초여름의 햇빛이 솔가지 사이로 간간이 비친다.

◇ 공릉, 그 단출함

공릉은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완만한 언덕 위에 홀릉(단릉)의 형식으로 봉분 하나가 단출하게 서 있다. 왕세자빈 묘의 형식이었기 때문에 조성 당시 봉분의 병풍석과 난간석, 망주석, 무석인이 생략됐다.

장순왕후는 죽은 지 9년이 지나 추존됐으나, 남편 옆이 아니라 외진 언덕에 홀로 묻혀야 했다. 추존이란 사후에 왕이나 왕비의 지위를 주거나 군주의 격을 높여 부르는 것을 말한다.

조선의 제도에서 능침은 남향을 바라보게 하는 게 원칙이라고 한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한양, 즉 지금의 서울이다.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궁궐 쪽을 오백 년 넘게 바라보고 있다.

공릉 주변에 개구리 한 마리가 눈에 마치 왕릉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다. 카메라를 코 앞에 들이대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무와 새, 양서류가 공존하는 삼릉은 생태적으로 건강한 숲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듯하다.

◇ 왕릉 배후림, 머물면서 걷는 길

개구리를 뒤로하고 '공릉 능침 북측 숲길'로 들어갔다.

공릉 뒤편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왕릉 뒤쪽 숲은 풍수적으로 주산(主山) 역할을 하는 신성한 공간이다. 능침 뒤 숲은 왕릉 경관 보호와 수맥 보존을 위해 엄격히 관리된다. 수령이 백 년이 넘는 소나무와 참나무 군락이 남아있다.

삼릉 숲은 조선 왕릉이 있는 곳 중에서 밀도가 비교적 높은 혼효림에 속한다. 숲길과 능 주변에는 소나무, 굴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물푸레나무, 산벚나무 등이 혼재하고 있다.

왕릉을 품은 배후림의 신성함을 느끼며 1.9㎞ 거리의 숲길을 천천히 걸었다. 가다가 마주치는 행인들의 속삭임도 조용하다. 이 숲의 고요함을 깨기 싫어하는 모양새다. 이곳의 숲길은 경건하게 머물며 걷는 길이다.

◇ 아름다운 새들이 찾는 숲

공릉 북쪽 숲길을 돌고 나와 순릉으로 향하는 길에 30명은 족히 돼 보이는 탐조인들이 굵직한 망원렌즈를 세우고 길 한가운데를 점령하고 있다. 멸종위기인 긴꼬리딱새가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을 목이 빠져라 바라보고 있다. 삼광조(三光鳥)라고도 하는 긴꼬리딱새의 수컷은 번식기에 몸길이의 3배 가깝게 꼬리가 길어진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시작해 60대 여성 등 남녀노소 탐조인들이 한 컷을 건지고자 하는 열망을 내뿜고 있다. 쪼그려 앉아 한참을 기다리다가 운 좋게 둥지로 날아온 암컷 사진을 한 컷 찍을 수 있었다.

초등학생 탐조인들은 숲길을 돌다가 나중에 다시 마주쳤다. 팔색조가 나타났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찍으러 간다고 한다. 올해 삼릉에는 파랑새까지 포함해 희귀한 새들이 유난히 많이 나타났다고 숲해설가가 말했다. 영화 '왕의 남자' 때문에 세상에 재조명된 한명회의 딸들을 위로하러 왔을까.

◇ 작고, 아름답고, 은밀한 연못

울창한 소나무와 참나무 숲을 지나 순릉의 비각에서 바로 작은 연못길이 시작된다. 조롱박 형태의 작은 연못은 순릉 오른쪽 뒤편 숲속에 마치 '비밀의 정원'처럼 은밀하게 숨어있다. 자라풀류의 초록 잎이 연못을 뒤덮고 있다. 연못 주위에 울타리가 조성되고, 앉을 수 있는 벤치도 있어 "이건 인공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궁능유적본부 관계자에게 재차 확인하니, 자연적으로 형성된 조그마한 습지가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이를 보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설명했다.

연못을 돌아 영릉까지 가는 1.2km 길이의 숲길은 파주의 대표적인 단풍 명소에 꼽힐 만큼 아름다운 길이라고 한다. 9월 말 또는 10월 초 이 길이 다시 열릴 때 찾아올 감흥을 상상해본다.

◇ 숲은 알고 있을까

청주 한씨 문중에서도 올해 삼릉을 많이 다녀갔다는 해설사의 말에, 종친회에 전화를 걸었다가 한명회의 호는 '압구'(狎鷗)가 아니라 '압구정'(狎鷗亭)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한명회가 말년에 노닐었던 정자이자, 그의 호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와 지하철역 이름으로 남았다.

압구는 갈매기와 친해진다는 뜻이다. 세상 권력을 내려놓고 강가에서 갈매기와 벗하며 유유자적하게 살겠다는 뜻을 나타냈을까. 그러나 한명회는 끝까지 권력의 중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공릉과 순릉은 조선 권력의 심장부에 머물기 위해 두 딸을 입궁시킨 한명회가 선택한 비극적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숲은 알고 있을까. 오늘도 소나무는 그대로 서 있고, 숲은 말이 없다.

☞ 삼릉 쉽게 찾아가기

승용차를 이용해 삼릉을 찾을 때는 5년 전 개통된 서울-문산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

정체가 있는 출퇴근 시간을 피해서 강변북로를 이용해 남고양IC로 진입한 뒤 금촌IC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금촌IC에서 삼릉 주차장까지는 4.7㎞, 승용차로 약 12분 거리다. 광화문에서 출발하면 36km 정도의 거리가 나온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8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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