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100돌] 전 세계서 '기역 니은'…한글, K-컬처 주인공으로

해외 세종학당 273곳서 연간 12만명 수강…"쉽게 이해하는 놀라운 문자"
한글 활용한 제품도 인기…코카콜라 등 알파벳 대신 한글 사용

임순현

| 2026-10-06 07:00:08

▲ [세종학당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카자흐스탄 세종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바이마간베토바 딜바르 교원 [세종학당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전 세계 세종학당 현황 [세종학당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주독일한국문화원 세종학당 수업 모습 [세종학당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코카콜라 제로 한류 [코카콜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한글을 처음 본 순간, 제 인생을 이 언어와 연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4년 카자흐스탄 구밀료프 유라시아국립대 학생이었던 바이마간베토바 딜바르 씨는 친구의 권유로 학교 안에 설치된 세종학당을 찾은 뒤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한글과 한국어의 매력에 빠진 딜바르는 중국학에서 한국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한국 공부에 더욱 매진했다.

2018년 최우수 학생으로 카자흐스탄 세종학당을 수료한 딜바르 씨는 이듬해 세종학당 교원으로 채용됐다. 2024년에는 서울에서 열린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에서 최우수 교원으로 선정되는 영광도 누렸다. 호기심에 한국어를 배웠던 어린 대학생이 10년 만에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 것이다.

K-컬처가 전 세계로 확산하는 흐름에 따라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이른바 '한국어 배우기' 열풍의 중심에는 세종학당재단이 한글·한국어 보급과 한국문화 홍보를 위해 운영하는 세종학당이 자리한다. 2007년 몽골 울란바토르를 시작으로 활동 무대를 넓혀온 세종학당은 올해 6월 기준 전 세계 89개국에서 총 273개소가 운영 중이다.

세종학당이 첫발을 내딛던 2007년 740명에 불과했던 수강생 수는 2008년 2천906명으로 늘었고, 2011년 1만8천508명, 2017년 5만6천202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이후 2022년 11만7천636명으로 처음 10만명대를 돌파했고 2025년 12만3천427명을 기록했다.

◇ K팝·K-드라마에 반해 한국어 공부

세종학당은 K팝이나 K-드라마를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외국인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을 배우는 통로가 됐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자치대 동아시아학과에 재학 중인 파울라 마르티네스 괄 씨는 초등학생 시절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빠져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집 근처 어학원에 다녔던 그는 대학교 때 바로셀로나 세종학당을 알게 되면서 전문적으로 한국어를 익힐 수 있었다. 2022년 세종학당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향상된 그는 학업과 함께 '죽고 싶지만 떡볶이를 먹고 싶어' 등 국내에서 출간된 책을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라트비아 리가기술대 국제협력부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하는 아네테 비나로비차 씨는 2018년 방탄소년단(BTS)을 좋아하면서 K팝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2022년 국제정책대학원(KDIS)의 '서울 G20 장학생'에 선발돼 한국을 방문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때마침 리가기술대에 세종학당이 생기면서 비나로비차는 한국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고, 지금은 일상적인 대화는 물론 보고서도 작성할 만큼 한국어를 습득했다.

브라질 사진작가 리아 마우러 씨를 세종학당으로 이끈 것은 드라마 '대장금'이었다. 브라질과 너무 다른 한국의 전통 의상과 음식에 매료된 그는 브라질 캄피나스 세종학당을 찾아가 한국어를 배웠다. 한국어가 능숙하게 되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고, 202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 전문사 과정에 입학해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 우수하고 편리한 '한글'은 특별한 매력

K-컬처에 매료된 외국인들을 '지혜로운 사람은 반나절에 깨우칠 수 있다'(정인지 '훈민정음' 해례 서문)는 한글의 우수성과 편리함 덕분에 부담 없이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다.

카자흐스탄 세종학당에서 교원으로 일하는 딜바르 씨는 "한국어를 전혀 모르던 학생이 한 학기 뒤 한글을 읽고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때 느끼는 보람은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케냐 나이로비 세종학당을 수료한 필리스 왕게치 은디안구이 씨도 한글의 편리함에 반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원어민 수준으로 한국어를 구사하는 은디안구이 씨는 2022년부터 나이로비 세종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새삼 한글의 가치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은디안구이 씨는 "자음과 모음을 배운 1주일 뒤 단어의 뜻을 몰라도 한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 놀랐다"며 "지금은 가르치는 입장에서 한글을 이해하는 게 얼마나 쉬운지 항상 놀란다. 한글이야말로 한국어의 특별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종학당에서 한글을 배우고 한글 서화 작가로 활동하는 외국인도 있다. 튀르키예 서화 작가인 아피페 카야 씨는 한글 서체에 반해 2022년 주튀르키예 한국문화원 세종학당에서 한글과 한국어를 배웠다. 그는 현재 한글 서화 작업은 물론 한글 캘리그래피를 넣은 한복을 제작하는 일도 하고 있다.

◇ 한글 디자인 제품으로 이어진 '한글 사랑'

한글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한글을 디자인화한 제품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 제품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알파벳이나 현지 문자 대신 한글로 제품명을 쓰는 사례가 늘었다. K-컬처 확산으로 한글 자체가 K-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마케팅 요소가 된 것이다.

실제로 빙그레는 지난해 말 미국 코스트코 요청으로 아이스크림 '싸만코 클럽팩'의 알파벳 브랜드명 아래 한글로 '싸만코'를 추가했다. 오리온도 지난 8월 베트남에서 판매하는 스낵 '마시타' 제품명을 국내와 동일한 '꼬북칩'으로 변경했다. 미국 등에서 판매하는 '붕고'에는 현지 바이어 요청에 따라 한글로 '참붕어빵'을 함께 표기했다.

일부 해외 시장에선 한글이 제품의 고급 이미지를 더하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CJ제일제당은 한글이 적힌 제품을 프리미엄 상품으로 여기는 현지 분위기를 반영해 태국에서 파는 만두·김치 포장에 한글을 넣었다. 현지 업체들이 김 스낵 등에 일부러 한글을 표기하는 모습을 보며 내린 결단이었다.

전 세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K팝 팬덤을 의식해 한글을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코카콜라는 2024년 한글로 된 로고 '코카-콜라'를 제품 전면에 쓴 '코카-콜라 제로 한류(K-Wave)'를 출시해 미국, 일본, 프랑스, 스페인, 싱가포르 등 세계 36개국에서 판매했다. 이는 코카콜라가 자신들의 로고를 알파벳이 아닌 다른 문자로 표기해 사용한 첫 사례였다.

(끝)

[ⓒ K-VIB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