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에 새긴 이주와 귀환의 기록…에드문드 드 발 개인전

가나아트센터서 '레인 다이어리'…청자·흑자 등 설치 작품 14점

박의래

| 2026-08-21 10:02:31

▲ 에드문드 드 발 개인전 '레인 다이어리' 전시 전경 [가나아트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작가 에드문드 드 발 [가나아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에드문드 드 발 작 '레인 다이어리' [가나아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에드문드 드 발 작 '콥틱 라이트, Ⅰ' [가나아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에드문드 드 발 작 '헤아릴 수 없이 귀하다' [가나아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도자에 깃든 기억과 사물의 이주를 탐구해온 영국 작가 에드문드 드 발(62)이 서울을 찾는다.

오는 28일부터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드 발의 개인전 '레인 다이어리'(rain diary)에서 작가가 최근 2년간 제작한 설치 작품 14점을 선보인다.

드 발은 다섯 살 무렵 아버지를 따라간 도예 수업에서 처음 도자를 접한 뒤 도예가의 길을 걸었다.

영국 도예가 제프리 휘팅의 도제로 2년간 수학했고, 케임브리지대 졸업 후 일본 도쿄 메지로 도자 공방에서 일본 도자를 공부했다.

동서양의 도예 전통을 아우르는 조형 언어를 구축한 그는 영국 박물관, 뉴욕 유대인 박물관, 영국 왕립미술원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그의 작품은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드 발은 도예가이면서 여러 권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2010년 출간한 '호박 눈의 산토끼'에서 그는 먼 친척에게 물려받은 네츠케(일본 전통 허리띠 장식품) 264점의 여정을 추적했다. 오데사와 빈, 파리를 거쳐 나치 치하에서 살아남은 작은 사물의 역사를 따라간 이 책은 26개 언어로 번역돼 150만 부 이상 팔렸다.

드 발은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 "사물이 어떻게 기억을 구체화하는지, 더 나아가 사물이 과연 기억을 붙잡아 둘 수 있는지, 이것이 나에게 있어 진정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의 대표 작품은 전시 제목과 같은 '레인 다이어리'다.

인도네시아 출생 미국 시인 리영리의 시에서 제목을 가져온 작품으로, 청자 유약을 입힌 기물 118점과 도자·은 파편을 담은 작은 백자 상자 14점으로 구성됐다.

드 발은 흰 진열장의 좁고 긴 선반 위에 크기와 형태가 다른 기물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해 시의 행간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리영리의 시가 비를 통해 아버지의 기억과 상실, 이주와 망명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작품 역시 사물의 이동과 부재를 떠올리게 한다.

드 발은 작가 노트에 "수십 년 동안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청자의 색채를 연구해 온 나의 명상적 기록"이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흑자를 활용한 '콥틱 라이트'(Coptic Light)는 미국 작곡가 모튼 펠드먼의 동명 관현악곡에서 제목을 가져온 작품이다.

짙은 흑유의 도자와 아일랜드 킬케니산 검은 대리석, 은 조각을 함께 배치했다. 대리석에 남은 화석의 흔적은 인간이 등장하기 이전의 지질학적 시간을 환기한다.

드 발은 이 작품에 관해 "깊은 음악성을 느끼고, 이에 공명한다"고 적었다.

'헤아릴 수 없이 귀하다'(precious beyond measure)는 한국과의 인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제목은 조선 문인 이하곤이 1709년 분원 가마를 찾아 도공들의 노동과 그릇의 가치를 기록한 글에서 가져왔다. 작품에는 드 발의 흑자와 함께 18세기 영국 웨지우드의 검은 석기 '블랙 바잘트' 파편, 송대 도자 파편이 놓였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온 파편을 한데 모아 도자가 대륙과 시간을 넘어 이동해 온 물질임을 보여준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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