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전쟁' 박혜민 PD "'싸느냐 참느냐'는 생존 문제죠"

화장실이란 공간 통해 노동인권·차별 실태 파헤쳐
한국 PD대상 작품상 이어 휴스턴 영화제 대상 수상
"사회적 약자 위한 못다한 이야기 2부작으로 풀고 싶어"

고가혜

| 2026-06-06 10:00:03

▲ EBS '다큐프라임-싸느냐 참느냐 화장실 전쟁'의 박혜민 PD [E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EBS '다큐프라임-싸느냐 참느냐 화장실 전쟁' 스틸컷 [E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EBS '다큐프라임-싸느냐 참느냐 화장실 전쟁' 스틸컷 [E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EBS '다큐프라임-싸느냐 참느냐 화장실 전쟁'의 박혜민 PD [E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화장실 전쟁' 박혜민 PD "'싸느냐 참느냐'는 생존 문제죠"

화장실이란 공간 통해 노동인권·차별 실태 파헤쳐

한국 PD대상 작품상 이어 휴스턴 영화제 대상 수상

"사회적 약자 위한 못다한 이야기 2부작으로 풀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고가혜 기자 = "화장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곳인데, 누군가에게는 매번 '싸느냐, 참느냐'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쉽게 허락되지 않는 공간이더라고요."

EBS '다큐프라임-싸느냐, 참느냐 화장실 전쟁'(이하 화장실 전쟁)을 연출한 박혜민 PD는 최근 일산 EBS 사옥에서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화장실'이라는 일상의 소재를 다큐멘터리의 주제로 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다큐의 제목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연극 '햄릿'의 대사를 패러디한 것"이라며 "'싸느냐, 참느냐'의 문제도 삶과 죽음을 고뇌할 만큼 가볍지 않은, 생존의 문제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화장실 전쟁'은 우리 일상의 가장 밀접하면서도 내밀한 공간인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통해 한국 사회의 노동 인권과 차별의 실태를 파헤친 다큐멘터리다.

기관사나 건설 현장 노동자, 도시가스 검침원 등 일터에서 인간의 기본적 생리 현상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현실을 날카롭게 짚어냈다. 이 작품으로 박 PD는 올해 한국PD대상 TV 시사다큐 부문 작품상에 이어 휴스턴 국제영화제 단편 다큐 부문 대상이라는 쾌거를 거뒀다.

수상 소감을 묻자 그는 "처음엔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공지가 잘못됐다는 전화가 올까 봐 휴스턴 영화제가 끝날 때까지 괜히 긴장했다"며 "한국PD대상도 직접 시상식 현장에 가고 나서야 '진짜 상을 받았구나' 싶었다"며 웃어 보였다.

49분 분량의 짧은 다큐 한 편이 국내외 평단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화장실 문제는 국경을 뛰어넘는 공통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아직 화장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11월 19일은 세계 화장실의 날로 지정돼 있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죠."

박 PD는 화장실이 '지극히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이라는 대중의 인식 때문에 관련 문제가 최근까지도 공론장에서 다뤄지지 못했다는 점을 짚으며, "화장실은 개인적인 공간이면서도 차별과 사회적 권력이 크게 작동하는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은 화장실 문제에 대한 불편을 이야기하면 자기관리나 질병의 문제로 비치는 경우가 많았다"며 "실제로 어떤 분들은 '너는 직업 정신이 없다', '장 관리를 왜 똑바로 안 하느냐'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동료들끼리도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고 떠올렸다.

이러한 현실을 보며 박 PD는 화장실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다뤄보고 싶었다고 했다.

"보통 인권이나 노동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정치적 입장 등 문제로 듣지 않으려고 하는 분들도 많은데, 그분들도 화장실을 못 찾아 힘들었던 경험은 분명 한 번씩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화장실 문제라면 남녀노소, 좌우 상관없이 대동단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다큐멘터리의 출발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우연한 계기였다. 박 PD는 지난해 여름 자신의 집을 방문한 에어컨 설치 기사가 '화장실을 써도 되냐'고 묻던 순간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미안함과 난처함 등 수많은 감정이 표정에 다 나타났어요. 남자가 여자 혼자 사는 집 화장실을 쓰는 것만으로도 민망한데, 일부 고객 중엔 실제로 컴플레인을 거는 분들도 있다고도 하더라고요. 매일 일을 하는 곳이 고객의 집이고, 화장실을 갈 때마다 매번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힘들까 싶었죠."

다큐 제작 과정에서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각 노동 현장의 화장실 실태를 촬영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매일 머리를 싸매고, 일부 현장은 인터뷰 출연자들이 직접 찍은 휴대전화 영상을 받기도 했다. 편집 과정에선 시청자들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더럽고 적나라한 광경은 최대한 덜어내고 용변을 형상화한 귀여운 캐릭터나 재미있는 실험 등을 넣어 다큐의 '톤 앤 매너'(Tone & Manner)를 조절하려 애썼다.

박 PD는 사실 노동 인권뿐만 아니라 화장실 내 불법 촬영 문제나 성소수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모두의 화장실' 등 다양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다며, 한정된 분량 때문에 이를 다루지 못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아직 담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실제로 인터뷰 촬영까지 다 했는데 편집 과정에서 걷어낸 부분도 있다"며 "기회만 된다면 그때 못한 이야기들을 모아 2부작으로 풀어내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박 PD는 이번 작품에 대한 시청자 반응을 보며 다큐 PD로서의 보람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라는 반응이 제일 뿌듯했다"며 "제 이야기에 공감한다면서 댓글에 각자 일터에서의 화장실 경험담을 써주시는 시청자들도 계셨는데, 너무 감사했다"고 돌아봤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졸리지 않는 다큐'를 만드는 것이 평생의 목표라는 그는 "앞으로 이런 아이템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다"면서도 꾸준히 재미있고,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박 PD는 "화장실 권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화장실을 사용하는 모든 이들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졌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화장실도 과거 흑인, 여성 등 수많은 약자들이 기나긴 싸움으로 얻어낸 결과물입니다. '싸느냐 참느냐'의 문제는 결국 현실에서 '싸우느냐 참느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더 이상 참지 말고 함께 목소리를 내 힘을 보탰으면 좋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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