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이야기] 다시 아이들의 꿈을 잡고 싶은 서울어린이대공원

권혁창

| 2026-04-29 08:01:00

▲ 서울어린이대공원 [사진/정동헌 기자]
▲ 벚꽃이 만개한 어린이대공원 [서울시설공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웰컴가든의 해치 나무모형 [사진/정동헌 기자]
▲ 어린이대공원 분수 [서울시설공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유강언의 문·무인석 [사진/정동헌 기자]
▲ 일제는 순명효황후 민씨의 능이었던 자리에 골프장을 만들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이승복 어린이상 [사진/정동헌 기자]
▲ 박정희 대통령 친필 기념비 [사진/정동헌 기자]
▲ 식물원에 있는 바나나 나무 [사진/정동헌 기자]
▲ 동물원 코끼리 [사진/정동헌 기자]
▲ 벚꽃이 활짝 핀 어린이대공원 [서울시설공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어린이대공원 놀이동산 [사진/정동헌 기자]

[공원이야기] 다시 아이들의 꿈을 잡고 싶은 서울어린이대공원

(서울=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 엄마 손을 잡은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는 손을 놓고 뛰기 시작했다. 언덕 너머 신기루처럼 펼쳐진 놀이동산을 향해.

한 아이가 뛰니 옆에 있던 아이도 같이 달렸다. 아이들 마음은 이미 허공을 가르는 청룡열차 위에 올라가 있다.

◇ "아빠가 딱 30년 전에 여기 왔었어."

서울 광진구 능동 서울어린이대공원. 공원을 걸으며 '30년 전'이라는 말을 세 번 들었다. 모두 아이 손을 잡은 아빠·엄마들이다.

연거푸 들리는 동일한 숫자에 귀를 의심했지만, 생각해보니 그럴만했다.

30년 만에 공원을 찾은 부모들은 두리번거리며 어려서 본 '별천지'의 추억을 찾아다닌다. 그 아스라한 꿈결 같은 동심의 추억을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게 신기할 뿐이다.

아이들은 다르다. 아빠가 어려서 왔던 곳이라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는 듯,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오로지 놀이동산과 동물원을 향해 있다.

자고 일어나면 아파트 한 채가 솟아있는 '개발의 시대'에 대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돼도 가볼 수 있는 '추억의 장소'가 남아있다는 것만큼 소중한 것이 있을까.

그러나 보존된 추억이 새 손님을 끌어들여 살아남으려면 '낙후'된 장소로 낙인되어선 안 된다.

어린이대공원 손성일 원장은 "추억만 가지고는 안된다"며 "새로운 모습으로 인근 서울숲공원과 경쟁하려고 한다"고 했다.

어린이대공원이 '추억'과 '트렌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 황후의 능→골프장→대공원

청기와 지붕에 전통 성문 양식으로 지어져 한눈에 웅장함이 느껴지는 정문은 어린이 놀이공원 이미지를 넘어서는 건축물이다.

1973년 개장할 때부터 있었던 문인데, 창경궁의 '창경원' 시절을 경험한 아이들에게 '놀이공원 정문은 원래 한옥 지붕'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을 수도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수국, 백리향이 심어진 웰컴가든이 아이들을 반기고 큼지막한 음악분수가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정문에 입장 티켓 파는 곳이 없다. 공원 전체가 무료 개방이다. 2006년 10월부터 무료입장이 됐으니 벌써 20년이 된 일인데 모르고 있었다.

분수 오른쪽으로 기와를 얹은 나지막한 돌담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어린이대공원 터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이다.

대공원 자리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 민씨의 능이 있던 유강원(裕康園)이었다. 이 동네 이름이 '능동'이 된 이유다.

순명효황후는 1882년 세자빈으로 간택되고 순종이 황제로 즉위하기 전인 1904년(광무 8년) 자녀 없이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혔다.

그러나 1926년 순종이 서거한 뒤 경기도 남양주 금곡의 홍유릉에 순종과 합장되면서 능동에는 능 터와 석등, 문인석, 무인석 등 석물만 남았다. 유강원 석물들은 현재 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다. 이곳도 역사의 격랑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조선총독부는 이듬해 골프장을 짓기 시작했고 1929년 '경성컨트리구락부'가 문을 열었다.

1941년 2차대전이 일어나면서 골프장은 비행장과 신병훈련장으로 사용됐다.

광복 후 이곳은 다시 골프장이 됐고 한국전쟁 기간 폐허가 됐지만 1954년엔 당시 정·재계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구성된 '서울컨트리클럽'이 생기고 이곳은 72홀의 국제 규모 골프장으로 재개장했다.

분수대 건너편으로 보이는 '꿈마루' 건물이 당시 골프장 클럽하우스다.

1970년 골프장은 한가로운 교외로 옮기고 어린이를 위한 공원을 조성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공원 건설 계획이 수립됐다.

건설 비용은 24억5천400만원으로 추산됐는데 이는 현재 화폐가치로 488억원에 달한다.

목표는 '동양 최대의 디즈니랜드'였다.

1973년 5월 5일 개장일에 60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었고 다음 날도 30만명이 입장해 대혼란을 이루자 일일 입장객을 5만명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 12개의 동상, 10개의 기념비

유강원 석물 바로 위쪽에는 젓가락처럼 생긴 희색 탑이 하나 있는데 가까이 가보니 탑이 아니라 동상이다. 한쪽은 이승복, 다른 한쪽엔 정재수 동상이 서 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는 이승복과 10살에 아버지를 구하려다 숨진 정재수는 충효(忠孝)의 대명사다.

어린이대공원엔 유독 동상이 많다. 이 두 명의 동상 외에도 고하 송진우, 박연, 을지문덕 장군, 고당 조만식, 소파 방정환, 유관순, 존 코울터(한국전쟁 당시 8군 부사령관) 장군 등 12명의 위인 동상이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각종 기념비와 조각상도 넘쳐난다.

한때 모든 학생이 암송해야 했던 국민교육헌장 비, '새나라의 어린이' 노래비, 유엔평화동산 기념비, 대한민국 어린이헌장 비, 어린이대공원 개원 기념비 등 10개의 기념비가 있고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모성애 등을 다룬 각종 조각상도 15개나 된다.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고 주입하려 했던 당시의 아동정책은 이제 구시대 유물이 됐지만, 이 역시 지난날의 한 줌 기억으로 회상하는 세대에겐 추억이라면 추억이겠다.

공원에는 숲으로 둘러싸인 두 개의 연못이 있는데 두 곳 다 고즈넉한 공간미가 느껴져 산책하다가 벤치에 앉아 쉬기에 더없이 좋다.

이승복 동상 인근에 있는 생태연못에는 두꺼비, 청개구리는 물론 직박구리, 왜가리 등 다양한 철새와 텃새들이 머무는 곳이다.

◇ 어딘가 딱따구리가 있다

공원을 걷다 보면 사방에서 딱따구리의 나무 두드리는 소리가 연거푸 들려온다. 깊은 숲속에 들어온 듯한 이 소리는 숲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썩은 나무 속 벌레를 잡아먹는 오색딱다구리가 파놓은 구멍은 박새나 다람쥐 같은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동물원 쪽에 가지 않아도 동물이 바로 옆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

모르는 사이에, 어린이가 어른이 된 사이에, 어느덧 50년이 된 어린이대공원은 이제 어엿한 숲으로 뒤덮인 숲-공원이 됐다.

확장 이전 준비 중이라 별로 볼 게 없을 거라던 식물원도 기대 이상이었다.

식물원에 있는 야자나무, 망고나무, 바나나 나무 등 열대식물은 1972년 베트남 참전용사들이 가져와 기증한 것들이다. 당시 해군 함정을 통해 열대나무 1천128그루를 들여와 이곳 식물원에 심었다고 한다.

동물원을 통과했다. 철창 너머로 물끄러미 고개를 돌린 돼지꼬리원숭이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원숭이를 구경하는 건지, 원숭이를 나를 구경하는 건지 늘 헷갈리는 찰나다.

쥐를 닮은 바위너구리가 코끼리와 인척 관계라는 설명이 마냥 신기해 짧지 않은 시간을 그 앞에서 보냈다.

◇ 공원은 화양연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대공원의 한복판이자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팔각당 앞에 섰다.

이곳에서 정문 쪽으로 난 큰 길가에 마침 벚꽃이 만개했다. 머지 않아 훈풍에 흩날리는 벚꽃잎이 아이들 머리 위로 떨어질 것이다.

반대편 후문 쪽으로 쭉 뻗은 대로는 은행나무길이다. 늦가을이면 뛰는 아이들의 발밑이 샛노랗게 물들 것이다.

놀이동산이 보인다. 높이 솟은 드롭타워 밑으로 패밀리코스터, 회전그네, 슈퍼점프, 바이킹, 후룸라이드, 범퍼카에 클래식한 회전목마까지.

마음이 바쁜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멀리서도 볼 수 있다.

놀이동산 입구엔 1세대(1973∼1983년) 청룡열차와 2세대(1984∼2012년) 청룡열차가 버려진 낡은 가구처럼 전시돼 있다.

대공원은 지난해 803만명이 찾아와 8년 만에 방문객 800만명을 돌파했다. 코로나 때 뚝 떨어진 손님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 된 이후 제2의 르네상스를 꿈꾸는 어린이대공원. 어른들의 추억도 잡아야겠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의 꿈을 다시 붙잡아야 할 것 같다.

대공원은 화양연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 참고 자료

1. 서울어린이대공원 활성화를 위한 재조성 방안에 관한 연구(2021, 손성일)

2. 박정희 정권의 아동정책 '읽어내기'(2008, 권형진)

3. 서울시 대규모 공원의 계획특성과 변화양상(2015, 김가림)

4. 서울어린이대공원 이용자 인식의 변화 연구(2024, 박지영·이승열)

5. '서울어린이대공원, 지난해 관람객 8년 만에 800만명 돌파!' 보도자료(2026)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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