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엔 빵과 술만…우리 할머니가 달라졌어요"

상차림 간소화 추세…"비대면 문화가 전통 제례에도 영향"

설하은

| 2022-09-09 09:30:00

▲ 차례상 차리는 법 코로나19 장기화로 간소한 비대면 명절 쇠기가 확산하며 추석 한 상이 밀키트 등 간편식으로 대체되고 있다. 삼성카드가 빅데이터 플랫폼 '링크(LINK) 파트너' 가입자 9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 응답자 52%가 이번 추석에 밀키트 등 간편식 구매를 늘릴 계획이라고 대답했다. 사진은 9월 13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설치된 차례상 차리는 법 안내문. [연합뉴스 자료사진]
▲ '간소화 표준안'대로 차린 9가지 음식의 차례상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9월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차례 간소화'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간소화 방안대로 차린 9가지 음식의 차례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차례상엔 빵과 술만…우리 할머니가 달라졌어요"

상차림 간소화 추세…"비대면 문화가 전통 제례에도 영향"

(서울=연합뉴스) 설하은 기자 = "할머니께서 이제는 빵과 술로 끝내자고 하시던데요."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차례상이 간소화되거나 아예 사라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직장인 박모(26)씨의 가족도 1년에 20번 가까이 있던 차례와 제사를 지난해 대폭 줄였다.

박씨는 "작년에는 돌아가신 어른들의 기일에만 제사를 지냈는데 이전과 비교해 20% 수준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특히 격식 있는 상차림을 고집하던 할머니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고 했다.

박씨는 "할머니는 차례를 지낸 직후 성묘를 하러 가서도 (묘소 앞에) 상을 차리는 분이었는데 지난번에는 그동안 지켜오던 격식을 다 내려놓고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단팥빵과 과자, 고기만 챙겨 가며 그게 더 좋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박씨의 할머니는 '차례상을 크게 차리는 것이 결국 자식들만 고생시키는 것'이라며 '내가 죽거든 빵과 술만 올리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50년 넘게 제사상과 차례상을 올려온 백모(77)씨는 코로나19 이후 추석 차례상을 차리지 않고 있다. 2020년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열린 가족 모임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해 가족 전체가 곤욕을 치렀던 기억이 생생한 까닭이다.

백씨는 "2년 넘게 차례를 생략하니 육체적으로 편하긴 하더라"며 "아무리 코로나가 감기처럼 지나간다고 해도 한 번에 집단 감염이 될 수 있는 위험은 여전하지 않으냐"고 걱정했다.

차례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져가는 사회적 흐름을 반영하듯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이달 5일 차례상 간소화 방안을 제시했다.

성균관유도회총본부회장인 최영갑 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은 차례로 인해 가족 사이의 불화가 초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음식 가짓수를 최대 9개로 제시한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당면한 상황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대면 전환은 전통적인 제례에 우선으로 영향을 미쳤다"며 "공동체를 유지해나갈 수 있는 새롭고 실용적인 방법을 코로나라는 경험을 통해 찾은 것"이라고 짚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의 비대면 시스템이 기존 질서나 제도 변화의 흐름을 가속한 것"이라며 "인간은 현실 지향적이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적응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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