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지철
| 2021-10-10 09:30:05
[다시! 제주문화](20) 잘못된 제주어 넘치는 인터넷…고민 없는 행정
'제주어 조례·표기법' 있지만 인터넷에선 무용지물
학생들 "배운 것과 현실 달라 제대로 쓰고 싶어도 못 써"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어는 제주 방언을 일컫는 말이다.
아래아(ㆍ)와 쌍아래아(‥) 등 지금은 거의 사라진 훈민정음 창제 당시 한글의 고유한 형태가 남아있어 '고어의 보고'로 일컬어지지만, 사용 빈도가 줄어들면서 제주어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문자를 표기하는 주요 수단이 된 오늘날 올바른 제주어 표기는 가능한 일일까.
◇ 인터넷에선 제주어 표기법 무용지물
'ㅁ+ㆍ+ㅁ국', '□국', 'ㅎ+ㆍ+ㄴ+저 옵서예'….
얼핏 보면 마치 상형문자처럼 보이는 한글 자음과 모음, 덧셈기호 등의 조합은 오늘날 제주어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사용할 때 인터넷상에서 아래아(ㆍ)와 쌍아래아(‥)를 제대로 입력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컴퓨터 키보드 또는 휴대폰에 이들 문자를 입력할 수 있는 문자키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있더라도 사실상 입력조차 되지 않는다.
일부 응용 프로그램을 사용하거나 설치해야만 가능하다.
이마저도 안 될 경우 어쩔 수 없이 덧셈기호(+)를 이용해 제주어를 표기하고 있다.
이러한 불편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물론 언론 보도에서도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한 번쯤 맛봤을 법한 '모자반국'을 뜻하는 제주어 'ㅁ+ㆍ+ㅁ국'을 쓸 때 '몸국'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국립국어원이 개설한 개방형 사전 '우리말샘'에선 '맘국'이라고 검색해야 해당 설명이 나오기도 한다.
'어서 오세요'란 뜻의 'ㅎ+ㆍ+ㄴ+저 옵서예' 역시 사람들은 발음대로 '혼저 옵서예' 정도로 표기하기 일쑤다.
몇 해 전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도 한 출연자가 '혼저 옵서예'란 가명으로 나오기도 했다.
모두 올바른 제주어 표기는 아니다.
제주에는 '제주어 표기법'이 있다.
제주도는 지난 2014년 '제주어 표기법'을 제정, 고시했다.
한글 표기 기준이 되는 한글 맞춤법(문교부 고시 제88-1호, 1988년 1.19)은 제1장 제1항에서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 그 대상이 표준어임을 명시하고 있다.
즉, 방언에 대한 표기는 한글 맞춤법의 대상이 아니란 뜻이다.
소멸 위기에 처한 제주어를 보전하고, 제주어를 문자로 표기해 사용하려는 사람들과 젊은 세대들이 일정한 원리에 따라 제대로 표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 바로 '제주어 표기법'이다.
제주어도 국어의 하위 범주이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한글 맞춤법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제주어 표기법은 한글 맞춤법에 규정된 40개의 자모(기본자음 14개, 기본모음 10개, 쌍자음 5개, 이중모음 11개)만으로 제주어를 표현하기 부족해 아래아(ㆍ)와 쌍아래아(‥)를 추가해 42개의 자모를 쓰는 것으로 정했다.
아래아(ㆍ)와 쌍아래아(‥)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 근대까지 사용되다 사라졌지만, 제주에선 여전히 그 발음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사라진 이들 문자를 굳이 쓰도록 하는 건 제주어의 특성을 표현해 그대로 보전하기 위함이다.
제주어연구센터 센터장인 김순자 박사는 "아래아 또는 쌍아래아를 잘못 사용한 제주어는 기형의 제주어를 양산하기 때문에 오히려 쓰지 않는 만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며 "지자체와 정부의 노력, 인터넷 포털의 기술적 지원을 통해 반드시 제대로 된 제주어를 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제주어 소멸 시간문제
"학교에서 배운 것과 현실은 다른 것 같아요. 제주어를 제대로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어요."
제주지역 한 중학생의 푸념 섞인 말이다.
제주어를 제주어 표기법에 따라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문자를 표기하는 주요 수단이 된 지 오래됐지만, 현실은 최소한의 반영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각종 인터넷 국어사전과 온라인 집단지성 사전인 나무위키, 세계인들이 활용하는 개방형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등에서도 제주어 표기법상 잘못된 표기가 버젓이 노출돼 있다.
언론 보도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어를 배우는 제주지역 학생들은 배움과 현실 사이에 나타나는 괴리 속에 혼란을 느끼게 된다.
언어는 쓰지 않으면 잊히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또 표기를 제대로 하기 어렵게 되면 간편한 방법을 찾아 잘못된 표기가 그 지위를 꿰차게 된다.
소멸 위기 제주어가 자취를 감추게 되는 건 시간문제다.
무엇보다 더 큰 위기는 지역 방언으로서 제주어가 가진 '한계'를 제주도민 스스로가 알게 모르게 수용하고 있다.
잘못된 표기를 보더라도 일일이 지적하기보다는 그냥 지나치고 만다.
국내 여느 지역과 달리 지역어 보전에 대한 조례(제주어 보전과 육성 조례)가 있고, 독자적인 표기법을 제정·고시해 올바른 표기를 하도록 권장한다면 그에 맞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잘못된 표기는 바로잡아야 한다.
'제주어를 아끼고 보전해야 한다'고 소리높여 외치고 있지만, 제주도와 제주도교육청 등 도내 주요 기관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의문이다.
인터넷에서도 쉽게 아래아(ㆍ)와 쌍아래아(‥) 입력이 가능한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해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해당 프로그램을 무료로 설치하도록 홍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립국어원은 언론보도 기사 제목과 본문 중에 외국어를 남발할 경우 적절한 우리말로 바꿔 자세한 설명과 함께 '쉬운 우리말 사용에 힘을 보태 주십시오'란 제목으로 기자들에게 일일이 메일을 보내고 있다.
제주에서도 올바르지 않은 제주어 표기를 쓴 기사, 방송 프로그램, 인터넷 사전 설명이 있으면 바로잡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제주도 문화정책과 고혜정 주무관은 "올바른 제주어 표기를 위한 홍보는 많이 하고 있지만, 정작 인터넷상에서 제주어 표기에 어려움이 있어도 이를 개선하려는 시도를 아직 해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번 기회에 인터넷에서 제주어 표기를 올바로 하기 위한 기술적인 부분 등에 대해 고민하고, 국립국어원의 방법을 차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찾아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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