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동체"…미생물 진화와 함께해온 인류 역사

도로시 크로퍼드의 탐색서 '치명적 동반자, 미생물'

임형두

| 2021-06-24 09:30:42


"우리는 공동체"…미생물 진화와 함께해온 인류 역사

도로시 크로퍼드의 탐색서 '치명적 동반자, 미생물'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지구가 생겨난 건 45억 년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약 40억 년 전에 미생물이 태어났다.

그렇다면 인류의 역사는 언제 시작했을까? 현생 인류로 치면 고작 20만 년밖에 안 됐다. 생명의 역사에 견준다면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하다. 생명의 전체 역사를 하루로 축약할 경우, 인간은 마지막 2~3초 사이에 나타난 새까만 후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규모로 보면 또 어떨까? 미생물은 단연 지구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생명체다. 총 생물량 기준으로 미생물을 모두 합치면 다른 모든 동물을 합친 것의 25배에 달한다. 종류로 따져도 100만 종이 훨씬 넘는데, 대부분이 환경에 무해한 미생물이다.

영국의 의학미생물학자 도로시 크로퍼드는 바이러스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미생물과 인류의 역사 이야기를 총체적이고 심층적으로 들려준다. 코로나19 상황이 멈출 줄 모르고 지구촌에서 연일 극성을 부리고 있는 터여서 그의 저서 '치명적 동반자, 미생물'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우리 인류는 까마득한 대선배격인 미생물과 공존해왔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이 피조물은 우리 몸의 구석구석에 진을 치고 살면서 인간이라는 종의 진화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의 코로나19처럼 유행병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몰살시키며 역사를 뒤바꿔놓기도 했다.

인간이 이 미생물을 발견한 것은 고작 350년 전의 일.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임을 깨달은 지는 겨우 150년 남짓이다. 그 장구한 시간 동안 미생물은 신비와 두려움의 장막 뒤에서 수많은 질병과 감염병으로 인류 역사를 좌지우지해왔다. 분명한 건 이 치명적 동반자들이 앞으로도 숙명처럼 계속 인류와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인류사 초기의 아프리카, 고대 아테네와 중세 유럽을 거쳐 21세기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이르기까지 개별적 사건들을 다뤄나간다. 그리고 세상에 출현해 인체에 침입하고 지구촌을 정복하는 미생물의 역사와 이에 대처하는 인간의 역사를 하나하나 깊이 탐색한다.

미생물은 출현 이후 '박테리오파지'나 '플라스미드' 등을 이용해 숙주를 자유롭게 왕래했다. 그리고 숙주의 몸속에서 기생하기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인류가 태어나 수렵채집인 집단으로서 야생동물을 사냥하자 미생물은 종간 장벽을 넘어 인체에 침입하고 대유행병을 일으키며 세계를 뒤흔들어놨다.

초기의 인류가 태동지인 아프리카를 떠나야 했던 것도 병원균과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수면병, 체체파리, 파동편모충 등이 인류의 대이동을 초래한 요인이었다는 것. 아프리카 밖으로 탈출한 인류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농경 생활을 하며 정착해갔다.

하지만 인간이 전 세계에 퍼지며 변화를 맞을 때마다 새로운 전염병이 나타나거나 기존의 전염병이 엄청난 기세로 유행하곤 했다. 전례 없는 사망자 수를 기록한 흑사병, 역사상 가장 끔찍한 아일랜드 대기근의 감자잎마름병 등이 그 대표 사례다.

분명한 건 미생물이 인간에 유해한 측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는 극히 일부라는 사실이다. 전체 100만 종 가운데 질병을 일으키는 것은 고작 1천400여 종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유익균이 유해균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얘기. 지피지기(知彼知己)이면 백전백태(百戰不殆),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옛말처럼 그 정체를 냉정히 바라보며 슬기롭게 대처해야 하는 이유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인류애와 이타주의가 지금처럼 절실한 때는 없었다는 뜻으로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인 앤서니 파우치 박사의 말을 인용하며 이같이 당부한다. "역사는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볼 것이다. 우리의 치명적인 동반자들은 언제나 우리를 그렇게 보아왔다."

소아과 전문의 출신인 옮긴이도 책의 앞머리 '옮긴이의 말'을 통해 "전 세계적 대유행병의 시대를 맞아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서 그 요체로 '겸손' '신중' '공동체 의식'을 제안한다. 인류의 위대함으로 어리석음을 극복해나가자는 얘기다.

강병철 옮김. 김영사. 364쪽. 1만7천500원.

(끝)

[ⓒ K-VIB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