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아름
| 2023-06-17 08:00:02
[지방에 산다] ⑮ "오히려 기회 많아"…최지원 독립영화 PD
아이돌 연기 지도하다 8년째 광주서 영화 제작 "재미 넘치는 도시로"
[※ 편집자 주 = 서울과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인생의 꿈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위에서는 모두 서울로 서울로를 외칠 때, 고향을 찾아 돌아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저 자기가 사는 동네가 좋아 그곳에서 터전을 일구는 이들도 있습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지금 이곳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만들어갑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가지 않고'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에서 꿈을 설계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삶을 연합뉴스가 연중 기획으로 소개합니다.]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지방에서는 스태프와 배우 구하기가 어렵지만, 오히려 사람이 귀한 만큼 서로 이끌어주는 장점은 훨씬 크죠."
최지원 광주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기획사에서 아이돌, 배우 준비생 연기 지도를 하다 광주에 내려와 독립영화에 뛰어든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연기를 전공했던 최씨는 서울 강남에서 연기 입시학원을 운영하며 수강생 80여명을 지도하고 외부 강의도 왕성히 했지만, 건강이 악화하면서 2016년 가족이 있는 광주에 내려왔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주 3일 수업하고 광주에 내려오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독립영화 현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광주에 정착했다.
최씨는 "광주 여성영화제에서 제가 연기 지도를 했다는 말을 듣고 연락했다. 당시 광주에 독립영화 PD가 한 명뿐이었고 스태프 수도 아주 적었다"고 회고했다.
영화 현장에서 배우로만 일해봤던 그는 광주 여성영화제에서 자체 제작한 영화 '결혼별곡'(김경식 감독)에 참여하면서 제작에도 첫발을 들였다.
제작부원으로서 업무에 대해 최씨는 "맛있는 밥을 제때 주문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긴장의 연속이기 때문에 밥이 맛있어야 신경이 날카로워지지 않는다"고 웃었다.
장비 대여료나 인건비를 고려해 장면별 촬영 시간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일도 필수였다.
다섯 작품에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성취감이 커졌고 사람들과 맺는 인연에도 큰 즐거움을 느껴 자연스럽게 PD로 활동 영역을 확대했다.
독립영화인이기에, 그것도 지방에서 영화를 만들기에 어려운 점도 있었다.
일부 배우와 동시녹음 등 기술직을 서울에서 부른다고 하더라도 지역에 스태프, 배우 자원 자체가 적기 때문에 인력을 꾸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이에 공감한 지역 영화인들은 5∼6년 전부터 광주독립영화협회 차원에서 매년 영화인의 밤 행사 등을 열고 인적 교류를 활성화했다.
인력이 귀한 곳이라 오히려 여러 역할을 해볼 기회가 더 많이, 쉽게 생기기도 해 빨리 성장하는 후배들도 많았다.
그러나 다른 직업과 병행하던 후배들이 결국에는 현장을 완전히 떠나거나 서울로 옮겨가는 일도 많아 최저시급이라도 제대로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역 영화인들과 노력했다.
최씨는 "저예산 영화는 15명 안팎이 1천만∼2천만원으로 제작한다. 지원금이 적어 감독이 1년간 돈을 벌어 제작하는 식이었다"라며 "광주에서 계속 함께 꿈을 펼치려면 각종 지원사업에 도전하고 후원을 유치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광주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영화축제로서 한단계 성장시켰다는 평가도 받는다.
투쟁 이미지를 넘어 축제 같은 영화제를 꿈꾸며 올해는 야외 상영도 처음 시도한다.
그는 "작은 영화지만 이런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수도권보다 지방이 촬영 협조를 훨씬 잘해주셨다"며 "선뜻 도와주시고 영화도 보러오시는 것을 보고 다른 시민들도 편하게 다가올 수 있게 만들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들이 지방에 살려면 일자리만큼이나 '살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재미있는 도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답답할 때 한강에서 바람 쐬며 맥주 한 잔 마시던 게 매우 그리웠다. 광주천도 그런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다"며 "최근 시민극단을 창단해 작지만, 젊은이들이 놀 수 있는 판을 만들었는데 이런 놀거리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먹을거리는 이미 많으니 놀거리, 볼거리가 많아야 하는데 복합쇼핑몰이나 연 1∼2회 축제만으로는 충족되지 않을 것 같다"며 "문화 기반 시설(인프라)을 확충하고, 박수치고 호응할 수 있도록 문화 의식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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