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미래路] 노마 히데키 "새 한일관계, K-예술처럼 다층적으로"

'한글의 탄생' 저자로 한국문화에 관심 쏟은 미술가…함경도 출신 어머니 영향
"K-예술, 한국만의 것 아닌 세계의 것…한일관계, 더 넓은 시야로 봐야"

조성미

| 2026-08-30 08:00:06

▲ 노마 히데키 전 도쿄외국어대 교수 겸 미술가 (도쿄=연합뉴스) 조성미 특파원 = 일본의 대표적인 한국어학자로 한글 연구의 필독서로 꼽히는 '한글의 탄생'을 집필한 노마 히데키 전 도쿄외국어대 교수 겸 미술가가 진정한 한일관계에 관해 연합뉴스와 인터뷰했다. 2026.8.30 csm@yna.co.kr
▲ 노마 히데키 전 도쿄외국어대 교수 겸 미술가 (도쿄=연합뉴스) 조성미 특파원 = 일본의 대표적인 한국어학자로 한글 연구의 필독서로 꼽히는 '한글의 탄생'을 집필한 노마 히데키 전 도쿄외국어대 교수 겸 미술가가 진정한 한일관계에 관해 연합뉴스와 인터뷰했다. 2026.8.30 csm@yna.co.kr
▲ 노마 히데키 전 교수의 한국 대중문화에 관한 저서 'K-POP 원론' [교보문고 책 소개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노마 전 교수의 '경주언어론시권' 한글 캘리그래피 [본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가 오는 11월 3일 한일 간 공조를 주제로 '2026 미래경제포럼'을 개최합니다. 급속히 블록화하는 글로벌 경제 지형 속에서 한일 양국이 초국가적 경제 공조를 이루는 방안을 논의합니다. 포럼에서는 오랜 기간 역사적 대립 관계이던 프랑스와 독일이 손잡아 출범한 유럽연합(EU)이 막강한 경제 연합체로 자리매김한 것을 참고해 한일 양국이 단계적 협력 체제를 만들고 경제공동체로까지 나가는 방안을 타진하고자 합니다. 이에 연합뉴스는 포럼에 앞서 한일 양국에서 협력 활동에 몸담아온 각계 인사들의 인터뷰를 매주 일요일 송고합니다.]

(도쿄=연합뉴스) 조성미 특파원 = "대학에 입학하기 직전 부모님이 보여주신 호적등본을 보고서야 어머니가 한국 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사실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아들에게조차 20년 가까이 이야기를 못 했다는 사실이었어요. 차별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러셨을까요."

일본의 대표적인 한국어학자로 한글 연구의 명저로 평가받는 '한글의 탄생'을 집필한 노마 히데키 전 도쿄외국어대 교수 겸 미술가가 한국과 한국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함경도 출신 어머니의 '고백'을 듣고 난 이후였다.

이후 한국어를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 분하고 '무언가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현대 미술 전공으로 대학교에 입학한 1970년대 초부터 한국어를 10년간 독학했다.

당시 일본에는 한국어 관련 서적이 너무 적어 학회지까지 구해 읽었다. 공부할수록 더 깊이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고, 서른 살에 도쿄외국어대 조선어과 진학을 결심했다.

대학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 10년 넘게 잊고 살았던 수험 공부를 다시 하면서 중학교 수학의 인수분해부터 다시 파고든 집념 끝에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게 됐다.

"메이지 유신 이후 도쿄외국어대에 조선어과가 생겼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쳐 사라졌어요. '조선도 일본인데 별도의 조선어 연구가 무슨 필요냐'는 이유에서였죠. 전후 1977년에야 다시 생긴 학과였습니다."

어렵게 조선어과에 다시 들어갔지만 한국어를 배운다고 하면 주변 반응은 "도대체 왜"였다고 한다. 지금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것에 대해 많은 일본인이 '멋있다'라고 반응한다고 한다. 일본 내 한국과 한국어의 위상이 가히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달라진 셈이다.

일반 대중은 2000년대 초 드라마 '겨울연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한류 열풍 속에 한국에 대한 관심을 키웠지만, 현대 미술 분야 등 한일 학계에서는 그에 앞선 1970년대부터 교류가 이어져 왔다고 그는 전했다.

노마 교수가 주축이 돼 양국의 젊은 미술작가들이 1979년 서울과 도쿄에서 연 '7인(人)의 작가, 한국과 일본'전이 그 예였다. 전시회 개최를 계기로 그는 남북 분단 이후 어머니와 연락이 끊겼던 이모·외삼촌을 기적적으로 상봉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일반인들까지 한국을 달리 보기 시작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대중문화의 영향이 컸다.

노마 교수가 1970년대 한국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한국어 교재에 수록된 노래들은 '노란 샤쓰의 사나이', '이별의 부산 정거장'과 같은 트로트 가요가 대부분이었다. 언어를 재미있게 배우도록 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도쿄외국어대 교수가 돼 한국어를 가르칠 때 그 역시도 '노래의 힘'을 빌렸다.

서태지, 듀스, 엄정화, H.O.T. 등 한국 인기 가수들의 노래 가사를 교재에 활용한 것이다.

그러던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블랙핑크, BTS 등 K-팝 대표 그룹들의 뮤직비디오였다.

"제가 미술을 전공했다 보니 뮤직비디오를 유심히 봤는데,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현대 미술 세계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영상이 나타난 것 아니겠어요. 언어, 시각, 청각, 팬들의 반응 모든 것이 어우러진 새로운 예술의 장이 나타난 것인데 모두 'K-팝'이라는 단어에만 사로잡혀서 주로 경제성 분석이나 음악 평론으로 논의하고 있어요. 미학, 철학, 언론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종합예술로서는 아직 제대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K-팝의 예술성이 주목받지 못하고 한때 유행의 기억으로 없어져 버릴 것을 우려한 그가 집필한 책이 2022년 일본에서 출간된 'K-POP(K-팝) 원론'이다.

2005년 한국 정부로부터 문화포장을 받은 저명 언어학자가 K-대중문화로 관심사를 확장한 것이다.

"K-팝에는 누가 봐도 K-팝인 스타일이 있습니다. 근대 인상파 그림은 누가 봐도 인상파 그림으로 느껴지는 것과 같아요. 처음에는 '한국 대중문화, 열심히 하네' 정도로 바라봤다면 지금은 세계를 이끄는 예술로 완전히 달라졌어요.

우리가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K-팝은 더는 한국만의 예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세상의 모든 요소를 모아서 비빔밥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한두 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려서 내놓은 결정체죠. 언어, 미학, 문화의 다원주의적인 요소가 함께 담겨 새로운 형태가 된 것이 K-아트, 새로운 K-팝이에요."

BTS가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권 음악을 별도 범주로 묶은 그래미의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 신설 이후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나뉘지 않기를 바란다"며 2027년 그래미에 작품을 출품하지 않기로 한 것도 K-예술의 다원주의적 면모가 드러난 사례라고 그는 해석한다.

그는 새로운 한일 관계에 대해서도 K-팝을 둘러싼 담론과 똑같은 해석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언어에는 '명명'을 통한 존재화의 기능이 있어요. 우리가 '한일관계'라고 명명해버리면 모든 것을 제쳐놓고 한 묶음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죠. 지금까지 대부분의 '한일관계'라고 하는 것은 정권과 정권의 관계였어요. 각국 정권이 원하는 바에 따라 한일관계의 모습이 바뀌는…. 앞서 이야기했지만 1970년대에도 한일 학계는 긴밀히 교류했지만 이런 사실도 지워져 버렸고요.

한일관계를 단순히 이웃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로만 바라봐서는 안 되고 우리가 K-팝, K-예술을 해석하는 것처럼 다층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양국이 단순히 동등한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한국의 위에 군림했던 과거사 문제도 빼놓을 수 없이 고려해야 할 부분이죠.

보편적인 관점 안에서의 한일관계가 돼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팔레스타인을 빼고 한일관계를 이야기할 수 없어요. 재일동포 문제를 빼고 한일관계 문제를 이야기할 수 없고요. '한일관계'라는 말로 규제받지 않게 더 넓은 시야로 위·아래(과거사), 옆(국제적인 시야로 파악한 문제들)을 보는 양국이 될 때 진정한 한일관계의 새 역사가 쓰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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