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래
| 2026-06-26 09:15:48
풍경화 이전의 공성훈…설치·개념미술 조명한 5주기 기념전
블라인드 작업·먼지그림 등 1990년대 초기 실험작 한자리에
'더블 블라인드'展…금호미술관서 7월 19일까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음산한 도시 외곽의 밤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회화로 잘 알려진 화가 공성훈(1965∼2021)의 초기 실험 작업을 조명하는 전시가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공성훈은 서울예고와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서울산업대(현 서울과학기술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서울대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자연과학적 태도와 공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설치, 개념미술, 사진,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활동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일상의 모습을 소재로 한 풍경화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고, 2018년 이인성미술상을 수상했다.
공성훈 작고 5주기를 맞아 열리는 전시 '더블 블라인드'(Double Blind)는 풍경 화가로 알려진 작가의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1990년대 초반 작가가 선보인 설치·개념미술 작업과 관련 아카이브를 한자리에 모아 이후 회화 작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의 출발점을 살펴본다.
전시 제목은 1991년 관훈갤러리에서 열린 작가의 첫 개인전 제목인 '블라인드 작업'(Blind-Work)에서 따왔다. 실험자와 피실험자 모두 조건을 알지 못한 채 진행되는 '이중맹검'(double blind)을 뜻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전시는 복원될 수 없는 과거와 현재의 시점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대표작 '블라인드 작업'은 이번 전시를 위해 재제작된 작품이다. 원작이 소실돼 유가족이 보관한 자료를 토대로 다시 만들어졌다.
블라인드 커튼에 형광 페인트를 칠하고 전기 모터를 장착한 키네틱 설치 작품으로 모터가 회전하면서 색채와 빛, 형태가 시시각각 변화한다.
공성훈은 작가 노트에서 "기계 시대의 예술은 '기계 시대의 감성'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며 TV의 발광하는 색채, 작동하는 기계의 단조로운 소음, 메커트로닉스의 경이로운 정확성과 자동성 등을 기계 시대의 감수성으로 꼽았다.
'해방 50주년 기념 석고 소묘'는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해방 50년 역사 미술전―우리는 어디에 있는가'에 출품한 작품이다. 한국 입시 미술의 상징적 대상인 아그리파와 줄리앙 석고상을 대형 목탄 드로잉으로 재현한 작업이다.
공성훈은 광복 50년의 역사적 성취를 기념할 수 있는 작품을 부탁받았지만, 그는 한국 미술 교육에서 석고 소묘가 반복·양산되어 온 현실에 주목해 입시 미술의 훈련 과정을 전시장에 제시했다.
그는 이 드로잉이 작품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왜 수많은 입시생이 여전히 이 훈련에 몰두하는지를 질문한다. 해방 이후 반세기 동안 크게 변하지 않은 입시 제도와 미술 교육의 관행을 향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낸다.
'먼지그림(북한산)'은 멀리서 보면 전통 수묵산수화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먼지와 머리카락, 비듬, 각질 등을 물감에 섞어 제작했다.
당시 아트페어 참가를 위해 제작됐지만, 작가는 집 안에서 모은 먼지와 머리카락, 비듬 등을 재료로 사용해 가까이서 보면 오히려 불쾌감을 주는 회화를 만들었다. 상품으로서 회화에 대한 기대를 비틀기 위한 시도였다.
이 연작 가운데 한 작품이 실제로 판매되면서, 공성훈은 미술 제도에 대한 비판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게 됐고 이후 '멀티 슬라이드 프로젝션' 연작으로 이어졌다.
이 밖에도 기록 영상, 회로도, 콜라주 드로잉, 구상 스케치, 설치 매뉴얼 등을 함께 선보인다. 이를 통해 예술의 가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기술과 시장, 미술 제도 속에서 작가가 어떤 위치를 점할 수 있는지에 관한 공성훈의 문제의식을 되짚는다.
전시는 7월 1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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