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나
| 2026-07-28 09:14:28
(부산=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고(故) 박동진 명창께서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고 하셨죠. 한국의 유산은 우리가 아름답게 여기고 잘 살펴야 합니다."
지난 26일 저녁 부산 벡스코(BEXCO) 오디토리움.
흰 두루마기를 입고 무대에 오른 소리꾼 장사익이 공연장을 가득 채운 2천500명의 관객을 바라보며 '우리 것'의 소중함에 관해 말했다.
그는 "선조들이 이룩해놓은 문화유산과 무형유산은 우리가 보존하고 후손에게 잘 물려줘야 한다"며 '우리 민족의 노래'를 함께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윽고 흘러나온 선율은 한민족의 정서가 녹아든 '아리랑'. 애끓는 듯한 특유의 창법으로 그가 노래하자 관객들도 함께 따라 부르며 부산의 밤을 채웠다.
공연 다음 날인 27일 부산 시내에서 만난 장사익은 "'아리랑'은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소리"라며 "'후'하고 숨을 내뱉으며 응어리를 풀어내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엄마'라고 부를 때처럼 아리랑을 노래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그리움, 사랑 등 여러 감정이 어우러진다"며 "마지막 곡으로 선택하는 이유"라고 귀띔했다.
평소 자주 부산을 찾는다는 그에게 이번 공연은 의미가 크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를 기념하며 국가유산진흥원이 기획한 '굿(GOOD)보러가자 부산' 특별 무대였기 때문이다.
'하나의 무대, 한국 예술의 모든 것'이란 주제로 구성한 이번 공연에는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인 김일구 명창, 권원태 줄타기 명인, 국립부산국악원 등 120여 명이 함께했다.
장사익은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온 '친구들'과 대표곡 '허허바다', '찔레꽃', '봄날은 간다' 등을 노래하며 22분의 무대를 꽉 채웠다.
장사익은 "흔히 이야기하는 '전통' 장르가 아니어서 이런 뜻깊은 무대에 올라도 될 지 고민도 많았지만, 무대에서 노래하는 내내 '하길 잘했구나' 싶었다"며 웃음 지었다.
"전통의 소리부터 거기에서 파생된 소리까지 함께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실 (무대를) 더 길게 할 수도 있었지만, 재즈에서도 최고의 음악가는 '양보'잖아요. (웃음)"
그는 관객과의 합(合)이 잘 맞았던 공연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의 역대 왕을 기리는 신성한 공간인 종묘의 의례부터 판소리 '적벽가'의 구성진 가락, 동래학춤, 줄타기까지 오늘날 K-컬처의 뿌리를 모았죠."
그의 말처럼 공연 내내 관객들은 한국 전통예술의 다채로운 '멋'을 즐겼다.
배우이자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이수자인 오정해가 사회자로 나서 "여러분을 뵈러 왔다. 부산의 파도 소리, 반가움의 소리가 들린다"고 말하자 큰 박수가 쏟아졌다.
1940년생인 김일구 명창은 공명이 전쟁을 앞두고 동남풍을 일으키기 위해 고사를 지내는 장면을 힘 있는 목소리로 구성지게 풀어냈다.
북청사자의 익살스러운 몸짓에 관객들은 즐거워했고, 권원태 명인이 제자와 무대 위에서 '쌍줄타기'를 선보이면서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자 환호하기도 했다.
장사익은 "내 무대 바로 앞이 줄타기였다"며 "화면으로 보는데 관객들의 웃음과 환호가 빵빵 터져서 속으로 '아이고'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한국의 전통 클래식부터 속악(俗樂)까지 한데 어우러진 무대에 관객들이 '정말 재밌었다', '좋았다'고 칭찬해주셔서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1994년 마흔다섯의 나이에 '늦깎이' 데뷔한 뒤 특유의 창법으로 한국적 서정을 노래해 온 장사익은 한국 문화에 대한 조언도 건넸다.
그는 한국 문화를 "가려운 곳을 딱 긁어주는 듯한 칼칼한 매력"이라고 규정하며 "K-팝을 비롯해 영화, 문학, 음식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외양이 아니라 속을 채울 때"라며 "K-컬처가 지속해서 생명력을 가지려면 그 속을 내실 있게 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노래가 무엇인지, 우리 문화가 무엇인지 꾸준히 고민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박수를 천천히 받더라도 성숙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장사익은 더 많은 사람과 '노래의 힘'을 나누고 싶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는 "음악, 혹은 노래는 마음을 움직인다"며 "한 곡의 노래를 통해 마음을 정화할 수 있고, 누군가와 공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사익은 이달 31일 경주에서 가수 윤수일, 바리톤 고성현, 영남국악관현악단과 함께 우리 음악과 대중가요, 클래식 성악이 어우러지는 무대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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