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재
| 2026-07-02 09:02:20
[미식탐험] K-푸드 고난도 간장게장…외국인 입맛을 사로잡다
(서울=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K-컬처 열풍을 타고 한국 음식에 빠져드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다.
서울의 간장게장 음식점에서는 날생선을 꺼리던 서양 관광객마저 '밥도둑' 간장게장 앞에서 젓가락질을 멈추지 못한다.
도쿄에서는 서해안 꽃게를 공수해 직접 간장게장을 담그는 식당이 현지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이제 간장게장은 더 이상 한국인만의 음식이 아니다.
◇ 미국인 MZ세대의 여의도 간장게장 도전기
최근 K-콘텐츠 열풍을 타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 여행객들 사이에서 프라이드치킨과 K-바비큐를 넘어, 진입장벽이 높은 한식으로 꼽히는 간장게장에 도전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미국인 제이다 스티븐스와 단짝 친구 길리 로이드 역시 부킹닷컴을 통해 만난 현지 호스트와 함께 특별한 미식 경험을 원했다.
이들이 찾은 곳은 전북 부안군 곰소 일대의 맛을 3대째 이어온 간장게장 전문점, 여의도의 칠산꽃게장이었다.
식당 벽면의 대형 액자에는 '간장 게장을 7일간 저온 숙성한다'는 외할머니의 가르침과 알이 꽉 찬 암꽃게만을 사용한다는 고집에 대한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이러한 스토리는 미국인 여행자들에게 단순한 식사를 넘어 큰 문화적 감동으로 다가왔다. 본격적인 식사에 앞서 이들은 호스트와 환한 미소로 인증 사진을 남기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끽했다.
◇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놋그릇의 향연, 그리고 맛의 충격
잠시 후 전통 방짜유기에 정갈하게 담긴 간장게장, 양념게장, 대하장, 전복장, 그리고 시원한 꽃게탕까지 화려한 미식의 향연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꽃게를 낯설어하던 제이다와 길리도 호스트의 시범에 따라 위생 장갑을 야무지게 끼고 본격적인 먹방에 나섰다.
길리는 커다란 게 다리를 들고 살을 쏙 빨아들이는 과감함을 보였고, 비린 맛 없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깊은 간장 풍미에 눈이 동그래졌다.
IT 계열 회사의 연구원이라는 제이다 역시 통통한 게살을 밥에 짜내어 비빈 후 고소한 감태에 싸 먹으며 한국인 못지않은 리얼한 먹방을 선보였다.
길리는 양념게장의 매콤함에 연신 입을 가리면서도 손에서 게장을 놓지 못했다.
한국인 호스트는 지평막걸리를 곁들이며 게장을 맛있게 먹는 팁을 나누는 등 친절한 가이드를 아끼지 않았다.
식사가 끝날 무렵, 장갑에는 양념이 잔뜩 묻었지만, 놋그릇들은 맛있게 비어 있었다.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만난 이들은 변산반도 외할머니의 손맛이 고스란히 담긴 게장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한층 더 가까워졌다.
낯선 이국의 음식을 온몸으로 즐긴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식사는 한국 미식 문화의 정수를 만끽한 최고의 모험이자 추억으로 남았다고 했다.
◇바다를 건넌 '밥도둑'의 신세계, 일본에서 만난 간장게장
지하철 도쿄 지하철 도자이선 카구라자카역을 빠져나오면 미로처럼 얽힌 돌담길과 고급 요정, 그리고 세련된 프랑스식 노천카페가 묘하게 공존하는 도쿄 최고의 '멋쟁이 거리'가 펼쳐진다.
이 지역은 고급 프랑스 요리점이 즐비한 곳으로, 됴쿄 사람들이 특별한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찾아 식사를 하는 곳이다.
이 서정적이고도 일본 최고의 미식가들이 모인다는 골목길에 한국의 간장게장 전문점이 들어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월 도쿄의 가쿠라자카의 음식점 쿠다라를 찾았다. 쿠다라는 백제라는 뜻이다. 일본어로 '쿠다라나이'라고 하면 '시시한', '별 볼 것 없는'이라는 뜻이 있다. 과거 백제에서 건너온 것이 아니면 별 볼 것 없는 것으로 여겼던 탓이라는 해석도 있다.
◇ 일본 미식 전문가 '오이시'(맛있다) 연발
이날 일본의 대표적인 미식 전문 기자인 미야코 씨를 만났다. 세계적인 잡지 포브스에 글을 기고하는 유명 미식 전문 기자인 그는 터키 미식 투어를 마치고 이틀 전 막 돌아온 참이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가쿠라자카에 간장게장이 있다는 소식을 필자에게서 듣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왔다.
처음에는 먹는 법을 몰라 게장만 따로 맛보던 그는, 쌀밥과 함께 먹어보라는 필자의 권유에 따라 간장게장을 밥과 곁들였다. 그러자 눈이 휘둥그레지며 "오이시", 즉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특히 뜨끈한 밥을 게딱지에 넣고 내장과 비벼 먹는 순간은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자꾸 손이 가는 은근한 감칠맛, 곧 일본인들이 중시하는 '우마미'(旨味)의 정수를 느낄 수 있었다.
간장게장은 바다를 건너 일본의 미식가들에게도 작지만 분명한 울림을 던지고 있었다. 사실 이날 맛본 간장게장을 비롯한 음식들은 단순히 한국 음식을 흉내 내는 수준이 아니었다.
일본 현지의 풍성한 식재료와 장류 인프라를 만나 한층 새롭게 진화했고, 간장게장에 흠뻑 빠진 일본인들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 윤기 자르르한 쌀밥과 미생물 발효 간장의 조화
일본의 간장 제조 기술과 미생물 활용 노하우는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노포 장류 업체들을 중심으로 정교하게 발달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판매되지 않는 밀로 빚은 백 간장 등 게장과 잘 어울리는 장을 과학적으로 선별해 매일 신선한 게장을 담근다.
여기에 서해안 변산반도에서 항공편으로 공수한 꽃게를 사용해, 비린내를 잡고 감칠맛을 한층 깊게 살린다.
그 결과 현지에서도 "한국보다 더 맛있다"는 찬사가 나올 만큼 차별화된 맛을 완성했다.
맛의 완성도를 높이는 또 하나의 요소는 일본을 대표하는 명품 쌀, 고시히카리로 지은 밥이다. 고시히카리 특유의 윤기와 은은한 단맛, 찰진 식감은 게장의 짭조름한 양념을 부드럽게 감싸며 맛의 균형을 이룬다.
기본이 되는 꽃게 역시 철저하게 관리된다.
변산반도에서 가업을 이어받은 젊은 선장이 전문적인 방식으로 조업한 최상급 꽃게를 사용하며, 잡아 올린 즉시 선상에서 급랭 처리해 조직과 선도를 최대한 보존한다.
이렇게 관리된 꽃게는 항공편을 통해 일본 현지 주방으로 신속하게 전달된다.
한국의 전통 공정에서 출발한 간장게장이 일본의 오랜 간장 과학과 고시히카리 쌀밥 문화가 더해지며 새로운 미식 경험으로 진화한 모습이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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