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코리안] 벨연구소 출신 한인 과학자가 가나에 심는 'K-테크타운'

'빌라세스티' 프로젝트 공동창업자 양경호 박사…"한국 기업 300곳 유치 목표"

정아란

| 2026-09-22 09:00:02

▲ 양경호 빌라세스티 공동 창업자 (목포=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지난해 10월 21일 전남 목포에서 열린 '2025년 제2차 세계한인비즈니스포럼'에서 강연하는 양경호 빌라세스티 공동 창업자 겸 미주한상총연 글로벌사업본부장. 2025. 10. 21. phyeonsoo@yna.co.kr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미국 뉴저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재미 한인 과학기술자이자 사업가인 양경호 박사는 이달 한국을 두 차례 찾는다.

지난 8∼11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제8차 한·아프리카 장관급 경제협력회의(KOAFEC·코아펙)에 참석한 데 이어 오는 28일 인천 송도에서 개막하는 세계한상대회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한미 양국을 오가며 일해온 양 박사를 더욱 바쁘게 만든 것은 가나에서 추진 중인 '빌라세스티' 프로젝트다. 가나 수도 아크라에서 약 40㎞ 떨어진 곳에 스마트산업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양 박사는 공동 창업자로 참여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을 위한 산업단지 'K-테크타운'도 사업에 포함돼 있다.

양 박사는 최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K-테크타운에 2028년 말까지 300개 한국계 기업들을 유치하는 것이 목표"라며 "좋은 부지를 선점해 한국 회사들을 위한 단지로 만들려고 한다"고 밝혔다.

양 박사가 연고가 없던 가나 사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그의 멘토인 빅터 로렌스 박사였다. 양 박사는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공부한 뒤 199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박사 후 연구원(포스트닥터·포닥)으로 2년간 있다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벨연구소와 인연이 닿으면서 미국에 정착하게 됐다.

로렌스 박사는 벨연구소에서 약 30년간 근무하며 부사장까지 오른 인물로, 아프리카 대륙을 해저 광케이블로 잇는 서아프리카 해저케이블 사업을 주도했고 2016년 미국 국립발명가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가나 출신인 로렌스 박사는 가나 관세청장 출신 인사와 함께 빌라세스티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양 박사를 공동 창업자로 영입했다.

처음에는 가나-미국 협력 사업으로 구상됐지만 진척이 더뎠고, 양 박사가 합류하면서 한국까지 아우르는 3개국 프로젝트로 확대됐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한국 계엄 사태 등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현재는 더 많은 한국 기업과 공공기관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뛰고 있다.

양 박사는 "현재 MOU를 맺겠다고 밝힌 중소·벤처기업은 20개 정도"라며 "이야기가 오가는 대기업들도 있지만, 대기업들은 마지막까지 사인을 안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들뿐 아니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창업진흥원,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한국수자원공사 등과도 협력을 논의 중이다.

타당성 조사는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가 가나 정부 신청을 거쳐 내년 초 착수할 예정이다. 양 박사는 "타당성 조사가 잘 나오면 일정 부분 펀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핵심 투자 유치는 주로 미국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양 박사는 착공 시점에 대해서는 "내년 말이 목표"라며 "전체 부지가 아니라 정보기술(IT) 관련 건물 2∼3개부터 시작해, 한국 중소벤처기업들에 맞는 공간부터 하나둘 진출시키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월 가나를 방문해 부총리급인 대통령 경제고문을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한 사실도 소개했다.

새로운 시장 진출과 대규모 개발사업에 따르는 리스크를 묻자 양 박사는 "혼자 아프리카에 나가면 리스크가 크지만, 300개 기업이 함께 가는 데다 좋은 위치를 한국인이 리드하고 정부 네트워크까지 갖추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가나의 강점으로 젊은 인구 구조를 꼽았다. 서아프리카 인구 4억6천만명 중 30세 이하가 60%를 넘고, 가나(인구 3천500만명)도 상당수가 청년층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가나 전문대·대학 졸업자가 11만명인데 일자리가 없어요. 이들이 소비자이자 생산 인력이 될 수 있습니다."

양 박사는 또 "가나는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고 한국과도 오랜 우호 관계를 유지해왔다"며 "각각 코피 아난과 반기문이라는 유엔 사무총장을 연이어 배출했다는 공통점도 있다"고 강조했다.

양 박사의 활동에는 한미 양국을 오가며 쌓은 네트워크와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그는 2004년 벨연구소를 나온 뒤 스타트업 창업과 기업 운영 등을 거쳐 2015년 재미한인혁신기술기업인협회(KITEE) 설립을 추진했다. 이후 미주한인상공회의소 총연합회(미주한상총연) 글로벌사업본부장을 맡는 등 양국의 기업·기술을 연결하는 활동을 이어왔다.

양 박사는 자신의 경력을 돌아보며 "처음엔 과학기술자로 시작해서 기업가, 스타트업 창업자, 스타트업 프로모터로 계속 역할을 바꿔왔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 있는 젊은 1.5세대 후배들을 보면서 한국과 미국을 엮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파운딩 체어'를 맡은 게 매우 많다"고 했다.

빌라세스티 사업은 공동창업자 3명이 향후 수익의 80%를 기부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 박사는 "개인적으로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며 "기업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7∼8년 해오다가 인제 와서 돈을 벌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어쩌다 보니 제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모두 한국 중소벤처기업들하고 연결돼 있네요. 내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기업들을 돕는 것도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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