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 2026-08-26 09:04:40
(아크라[가나]=연합뉴스) 박성진 기자 = "한국은 노예제라는 역사적으로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에 가담한 국가들(유럽 국가들)과 다릅니다. 한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가나의 성채'(Forts and Castles of Ghana) 보존을 지원하는 것은 공감에서 비롯된 인간애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블라 지파 고마시 가나 문화관광창의예술부 장관은 25일(현지시간) 가나 수도 아크라의 문화부 청사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과거 유럽인들이 노예무역 장소로도 사용했던 '가나의 성채 보존을 지원하는 한국과 유럽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대답했다.
그는 "한국이 가나에 손을 내민 것은 가나가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지원)을 유럽과 같은 선상에 놓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한국 국가유산청과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가 가나의 세계유산 성채 보존을 위한 한-가나 기후변화 문화유산 사업 착수식을 아크라에서 열기 하루 전 진행됐다.
가나의 성채는 1482년부터 1786년까지 가나 해안을 따라 영국, 덴마크, 독일 등 유럽 열강이 세운 요새와 성이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이곳들은 원래 금과 상아를 거래하던 교역 거점이었으나 노예무역이 본격화된 17세기 이후에는 대서양 노예무역의 아픈 역사를 보존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로 훼손이 심각해지면서 국가유산청이 이번에 보존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고마시 장관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가 자국을 비롯한 아프리카 시민들의 삶뿐 아니라 문화유산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기후변화는 가나 성채뿐만 아니라 주거지와 사람들의 생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개인적으로도 바닷가에 있는 내 집도 (해수면 상승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행하게도 성채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 많은 시민이 성채를 잃는 것은 우리의 전통과 역사의 일부를 잃는다는 점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마시 장관은 "일부 성채는 이미 심하게 훼손돼 복원될 수 없지만 유네스코한국위원회와 남아 있는 성채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국가유산청은 가나의 성채가 기후변화로 훼손될 위기에 처함에 따라 올해부터 2030년까지 5년간 보존을 돕기 위해 지원에 나선다.
국가유산청이 사업자로 선정한 유네스코한국위는 훼손 상태가 특히 심한 유적 6곳의 3차원(3D) 도면을 작성하는 등 유적 현황을 조사하고 가나가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을 예측하는 지도와 모니터링 체계도 구축하며, 위험 데이터 구축에 필요한 장비도 제공한다.
이 사업은 기후변화 분야에서 한국이 문화유산 공적개발원조(ODA)에 나서는 첫 사례다.
고마시 장관은 성채 보존이 지닌 경제적·문화적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관광과 문화는 가나의 세 번째 외화 획득원이며, 유형문화유산인 성채는 관광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가나 국민뿐 아니라 아프리카인과 아프리카 디아스포라가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 상위 3곳이 모두 가나 성채라는 것이다.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는 노예무역 등으로 고국을 떠나 미국 등 다른 지역에 집단을 형성한 아프리카 후손을 일컫는다.
고마시 장관은 특히 "외국인 관광객 중 미국인이 가장 많은데 이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라며 "그들은 우리 유산과 다시 연결되기를 원하는데 이 유적이 그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부산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던 고마시 장관은 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한국의 사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서 한국이 이번 협력에 나서준 것에 사의를 표했다.
그는 "한국은 세계 경제에서 무시할 수 없는 강국이며 우리는 한국과 협력을 통해 가나 문화유산 보존 종사자들이 한국의 최선의 사례를 배울 수 있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기울인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한국이 우리와 협력하고자 한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며, 지식 교류와 유산 보존에 필요한 장비를 지원해주는 데 대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고마시 장관은 "이웃에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미는 것은 고귀한 일이며, 한국이 가나를 위해 한 일이 바로 그런 것"이라며 "단순히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감정을 나누고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 '나는 초강대국이고 너는 약소국이야'라는 식의 관계가 아니라 (가나를) 파트너로 생각한다"며 "양국 관계는 가장 깨끗한 동맹 관계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올해 61세인 고마시 장관은 국회의원과 장관이 되기 전 배우와 극작가로도 유명했다.
문화 예술인 출신 정치가인 그에게 '한국 K팝과 드라마가 가나에서 인기가 있느냐'고 묻자 "젊은 세대는 K팝을 좋아하지만 내 세대에는 K팝이라고 하면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떠오른다"면서 "그 사람과 무대 위에서 춤 모두가 기억난다"며 웃었다.
그는 "가나 창작자들이 한국과 창작 분야에서 협업할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히 있다"며 공연뿐 아니라 음식과 패션 등에서 협력 가능성을 거론했다.
또 "내가 한국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 친구들이 꼭 한국 화장품을 사 와 달라고 얘기할 만큼 한국은 미용 산업으로도 유명하다"며 "가나 젊은이들이 이 분야에서도 한국에 배울 것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업을 계기로 양국의 협력이 전반적인 분야로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청년들이 휴가 때 가나로 오고 가나 청년들이 한국에 배우러 가는 것을 희망한다"며 "많은 이들이 오가면 환승을 거쳐 18시간 이상 걸리는 비행시간도 직항 개설로 더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미래 협력을 통해 한국이 아시아의 허브가 돼 아크라에서 한국으로 직항편으로 가고, 한국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끝)
[ⓒ K-VIB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