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현
| 2026-09-05 09:01:03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강성철 정아란 성도현 기자 = 러시아 연해주와 사할린, 중앙아시아 5개국, 한국과 일본, 유럽까지. 9월 16∼17일 '제1차 한-중앙아 정상회의'를 계기로 연합뉴스 취재진은 약 6개월간 '한·중앙아를 잇다' 기획을 준비하며 고려인의 160여년 이동사와 오늘날 한-중앙아 관계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강제이주의 흔적부터 중앙아 현지 사회에 뿌리내린 고려인 후손, 한국문화를 즐기는 젊은 세대, 산업·에너지와 공적개발원조(ODA) 현장, 한국에 정착해 살아가는 중앙아 이주민과 그 자녀까지 취재 대상도 다양했습니다.
14편의 기사에 미처 소개하지 못한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10개국의 골목과 밥상, 학교와 일터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과 일상을 담은 26장의 사진으로 6개월간의 여정을 되짚습니다.
고려인의 160여년 이동사를 따라가는 길에서 먼저 만난 것은 러시아 연해주에 남은 한인들의 흔적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1860∼1920) 선생이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 역시 도시의 일상에 남아 있었습니다.
사할린 코르사코프항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처음 발을 디딘 곳이자, 전쟁 말기 일부가 일본 탄광으로 다시 끌려가기 위해 배에 올랐던 곳입니다. 지금은 평온한 항구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동포의 기억 속에는 도착과 이별이 반복됐던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탄광과 벌목장에서의 노동, 해방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시간, 학교를 세워 한국어를 가르쳤던 기록까지. 사할린 한인의 역사가 사할린주향토박물관 내 전시관 한쪽을 채우고 있습니다. 텃밭과 학교, 일터처럼 평범한 생활의 기록은 이들이 사할린에서 어떻게 버티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궜는지를 보여줍니다.
사할린주립미술관에는 남북한 미술품이 함께 전시돼 있습니다. 도자기 ·그림 등 300여점의 작품을 통해 한반도 문화가 러시아 극동의 공간에서 나란히 관람객을 만납니다. 남북의 작품이 한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풍경이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외곽에는 중앙아 유일의 고려인 전용 '아리랑요양원'이 있습니다. 부양가족 없이 홀로 지내는 고령 고려인들이 생활합니다. 중앙아에 정착해 삶을 일군 세대가 고령화하면서 역사 보존과 함께 이들의 노후를 누가 돌볼 것인지가 새로운 과제입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침블락은 한여름에도 눈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만년설의 경계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고려인들이 삶의 터전을 일군 중앙아도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과제 앞에 서 있습니다.
타슈켄트 명소 '서울문'에 자리 잡은 한국식 거리음식점. 한글 간판 아래 히잡을 쓴 손님들이 김밥과 한국 음식을 즐기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한국문화는 공연장이나 축제장을 넘어 식당과 카페, 젊은이들의 평범한 하루 속에 있었습니다.
알마티 젊음의 거리에서는 '춘천 주막', '닭껍질튀김' 같은 한글 간판이 밤거리를 밝힙니다. 평일 늦은 시간에도 한국식 포장마차를 찾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한국을 방문하지 않은 이들도 음식과 음악, 거리문화 속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국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는 대한민국과 키르기스스탄의 이름을 함께 단 공원이 있습니다. 지방정부 간 교류로 시작된 이 공간은 양국 수교 30주년을 맞아 2022년 '우정의 공원'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정부와 도시가 만든 교류의 공간 옆에서는 이제 젊은 세대가 음악과 언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서로를 만나고 있습니다.
비슈케크의 학교 체육관에서는 키르기스스탄 청소년들과 한국 대학생들이 함께 K-댄스를 췄습니다. 익숙한 음악이 흐르자 국적과 언어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한류를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춤추고 노래하며 한국문화를 즐기는 세대가 자라고 있습니다.
거리의 한글과 K팝에서 확인한 한국과의 접점은 도로와 에너지, 일터와 공적개발원조(ODA) 현장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협력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시설을 지은 뒤에도 현지에 기술과 사람이 남을 수 있느냐였습니다.
'알마티 순환 고속도로'(BAKAD)에서는 대형 도로 자체뿐 아니라 완공 이후 운영과 유지관리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인프라 협력이 일회성 건설에 머물지 않고 현지 교통체계와 운영 역량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다음 단계의 과제입니다.
투르크메니스탄 발칸조선소에서는 한국 측 전문가와 현지 인력이 작업 현장에서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거대한 시설보다 눈에 들어온 것은 그 안에서 기술을 익히고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수주와 건설 이후 현지 인력이 직접 운영하고 기술을 축적할 수 있어야 산업협력 역시 오래 이어질 수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중앙아의 평원 위로 풍력발전기가 돌아갑니다. 화석연료와 광물의 땅으로 익숙했던 중앙아에서도 에너지 전환을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풍부한 천연자원에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기술을 어떻게 결합할지는 한국과 중앙아의 새로운 협력 분야로 꼽힙니다.
타지키스탄에서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을 중심으로 낡은 관개·양수 시설을 현대화하는 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현장 관계자들은 직접 물길을 살피며 필요한 지원과 운영 여건을 확인했습니다. 시설을 새로 놓는 것만큼 사업이 끝난 뒤 현지에서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한국이 지원한 장비 앞에서 현지 교육생들이 기술을 익힙니다. ODA 사업이 종료된 뒤에도 교육과 실습이 계속된다면 지원한 기계는 현지 기술을 키우는 도구가 됩니다. 건물과 장비보다 오래 남아야 하는 것은 결국 그것을 직접 다루고 다음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의 역량입니다.
중앙아 사람들은 우리 안에서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건넌 사람들이 생활권을 만들고 가족을 꾸리면서, 그 자녀들은 한국의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경기 안산 땟골마을에는 우즈베키스탄 식당과 고려인마트, 러시아어 간판이 이어집니다. 중앙아와 러시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한국의 한 동네에 새로운 생활권을 만들었습니다. 멀리 떨어진 고향의 음식과 언어는 이곳에서 이주민의 일상이 되고, 기존 주민에게는 새로운 이웃의 문화가 됩니다.
식당의 전통 화덕에서는 중앙아식 만두 '삼사'가 구워집니다. 이동하면서도 사람들이 가장 오래 간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음식입니다. 고향에서 먹던 한 끼는 국경을 넘어 새로운 도시의 메뉴가 되고, 음식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는 가장 일상적인 접점이 됩니다.
한국에 온 아이들에게는 학교생활 자체가 새로운 공부입니다. 교사는 말과 글뿐 아니라 수업 방식과 학교 규칙까지 하나씩 설명합니다. 아이들의 정착은 한국어 몇 마디를 익히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새로운 사회에서 친구를 만들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여러 나라 국기가 걸린 복도를 따라 이동합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이제 같은 학교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부모 세대가 일자리를 찾아 건넌 국경 너머에서 자녀들은 이미 한국 사회의 다음 세대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고려인의 이동은 중앙아에서 한국으로만 향하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이 그 이동선을 더 따라가자 독일과 네덜란드 등 유럽 곳곳에서 또 다른 삶을 꾸린 후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유럽에 정착한 고려인 가정의 식탁에도 당근 김치 등 익숙한 음식이 올라옵니다. 가족 구성원의 국적과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져도 음식은 세대를 잇는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이동하면서 희미해지는 문화가 있지만, 집 안의 밥상처럼 사적인 공간에서 오히려 오래 이어지는 기억도 있었습니다.
교육과 직업, 결혼과 가족을 따라 유럽으로 향한 이유는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누군가는 의료·연구 분야에서 일하고 누군가는 예술가와 전문직으로 현지 사회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들을 하나의 전형적인 '유럽 고려인'으로 묶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동 경로만큼 정체성과 한국을 기억하고 연결하는 방식도 서로 달랐습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독일에서 온 고려인과 사할린동포 후손들은 대부분 암스테르담 간담회에서 처음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조부모와 부모 세대의 이동으로 향하자 대화는 빠르게 깊어졌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각자의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가족사를 통해 공통점을 발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국 음식을 나누는 동안 러시아어와 영어가 오갔습니다. 대화는 한국과 뿌리, 조부모가 겪었던 이동과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전할 것인지로 이어졌습니다. 처음 만났던 사람들은 몇 시간 뒤 연락처를 주고받았습니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한 끼의 식사를 계기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사는 나라와 사용하는 언어, 살아온 길은 달랐지만 이들에게는 가족의 이동사와 한국이라는 공통된 뿌리가 있었습니다. 만남이 끝난 뒤 이들은 다시 연락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조부모 세대가 자기 뜻과 무관하게 국경을 넘어야 했다면, 후손들은 교육과 직업, 가족의 미래를 따라 새로운 삶의 터전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에서 마주한 두 작품은 극명하게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한쪽에는 어두운 방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다른 한쪽에는 푸른 화면 위로 꽃을 피운 나뭇가지가 있었습니다.
두 작품이 고려인의 역사를 그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연해주와 사할린, 중앙아와 유럽을 취재하며 바라본 두 화면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삶을 이어가고 새로운 땅에 다시 뿌리내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160여년간 이동의 이유와 방향은 달라졌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곳에서 다시 삶을 이어갔습니다. 6개월간 카메라에 담은 26장의 풍경도 그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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