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나
| 2026-08-10 09:00:01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칠십 년 동안에 걸쳐 열 개의 벼루를 갈아 닳게 했고, 천여 자루의 붓을 다 닳게 했다."(권돈인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819년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는 34세 나이로 과거에 합격한 뒤, 승정원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규장각 대교, 성균관 대사성, 형조참판 등 주요 요직을 거쳤으나 1840년 제주에 유배돼 약 9년간 귀양살이를 한 뒤로는 더는 관직에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시절, 그는 결코 붓을 놓지 않았다.
추사는 동료, 제자들과 편지 혹은 글씨와 그림을 주고받으며 고된 생활을 견뎠고, 부단한 노력으로 파격적이면서도 개성 넘치는 '추사체'를 완성했다.
19세기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추사의 예술혼 여정은 어떠할까.
추사의 삶과 학문,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자리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서화실에서 선보이는 세 번째 주제 전시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반자'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추사 김정희를 둘러싼 사람들과 그의 삶과 학문, 예술을 새롭게 조명하는 자리"라고 10일 소개했다.
11일 개막하는 전시는 추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보물 '김정희 필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를 포함해 편지와 서예, 그림 등 38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는 추사의 삶을 비추며 시작된다.
아내와 벗, 제자에게 보낸 편지 5점에는 가족을 향한 애정과 그리움, 학문과 예술에 대한 열정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819년 4월 황해도 병영의 어느 무관에게 쓴 편지는 처음으로 공개된다.
그해 추사의 부친 김노경(1766∼1837)은 예조판서에 임명됐고, 추사는 문과에 급제하며 집안에 경사가 이어졌는데 추사는 편지에서 조심스러운 마음을 내비친다.
박물관 관계자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쓴 편지"라며 "젊은 시절 김정희는 부친과 필체가 유사했는데 이 편지에서 잘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금석학과 문예, 불교에 모두 능했던 추사의 면면도 엿볼 수 있다. 금석학은 금속이나 돌(비석) 등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연구하는 학문을 일컫는다.
추사는 24살에 부친을 따라 청나라에 간 뒤 당대 최고 학자였던 옹방강(翁方綱·1733∼1818), 완원(阮元·1764∼1849)과 만나 고증학과 금석학의 중요성을 깨우쳤다.
전시에서는 추사가 1851∼1852년 함경도 북청에 유배됐을 당시 청해토성에서 돌화살촉인 석노(石砮), 돌도끼인 석부(石斧) 등을 발견한 기록을 볼 수 있다.
당시 추사는 문헌 기록을 연구하며 기원전 약 6세기부터 만주 북동부에 살던 숙신(肅愼)의 유물로 판단했는데, 그가 지은 '석노시'를 담은 시첩이 처음 소개된다.
박물관은 "시 뒷부분에 덧붙인 오세창(1864-1953)의 글에는 김정희 말년 서체를 잘 보여주므로 68세 무렵에 쓴 것으로 판단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추사가 직접 경주 풀숲을 조사하며 찾아낸 '무장사 아미타불 조성기비' 조각의 경우, 옆면에 발견 경위와 감회를 새긴 기록이 남아있어 시선을 끈다.
추사와 함께한 벗, 혹은 동반자를 조명한 부분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청나라의 문인 주학년(1760∼1834)이 그림을 그리고 옹방강과 완원 등이 감상 글을 남긴 '소동파입극도'는 청나라 문인들과의 교유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제자인 허련(1808∼1893)이 원나라 화가 예찬의 화풍으로 그린 산수도,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이 1851년에 그린 난초 그림도 처음으로 관람객 앞에 선다.
두 작품은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기증한 회화 작품이다.
평생의 벗인 김유근(1785∼1840)과 권돈인(1783∼1859)을 위해 그린 '가을 나무와 흰 구름', '번상촌장에게 증정한 난초' 등도 만날 수 있다.
이 밖에도 추사가 60대 후반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불이선란도', 과천 봉은사에서 머물며 남긴 '산호가·비취병 대련' 등은 꼭 봐야 할 명작으로 소개된다.
'불이선란도' 그림은 9월 13일까지 약 한 달간 공개할 예정이다. 이후에는 주학년을 위해 썼다고 전하는 '함추각 행서대련' 글씨가 전시실을 채운다.
유 관장은 "김정희가 지역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사귀고, 학문의 경계를 넘으며 옛것을 바탕으로 이뤄낸 탁월한 서화의 경지를 깊이 감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22일까지 열린다.
박물관은 12월부터는 서화실에서 '조선 모더니즘 : 조선 말기의 회화'를 조명한 주제 전시를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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