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숙
| 2026-07-04 09:00:37
[걷고 싶은 길] "물고기 맞아?"…순천만습지길 도보여행
드넓은 갈대밭과 갯벌의 매혹…남파랑길 61코스
(순천=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갯벌은 숨 쉬고 있었다. 칠게, 농게, 짱뚱어, 왜가리들이 차지한 갯벌은 자연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순천만 갯벌은 한국의 대표적 연안습지다.
광활한 갯벌에 펼쳐진 갈대숲을 거닐 때 자연의 경이가 함께 한다.
◇ 오감으로 전해지는 순천만의 매력
끼룩끼룩, 꽉 꽉, 삐릭 삐릭 …. 문자로 옮기기 어려운 새 울음들이 나무 위가 아니라 발아래에서 들려왔다.
데크 길이 지나가는 갈대밭에 깃들어 사는 온갖 종류의 새들이 내는 소리였다.
끝없이 펼쳐지는 갈대밭과 갯벌이 연출하는 연안습지의 몽환은 순천만이 아니고는 느끼기 어렵다.
순천만습지를 관통하는 도보여행 길이 남파랑길 61코스다.
순천만 갈대 길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남파랑길 61코스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마을인 와온해변에서 시작해 용산전망대∼순천만습지∼장산마을∼별량화포 해변으로 이어진다.
총거리는 13.7㎞다. 이중 와온해변에서 용산전망대를 지나 순천만습지 매표소까지 약 6㎞를 걸었다.
◇ 걷고 보는 순천
남파랑길은 동·서·남해안 및 DMZ 접경지역을 하나로 연결하는 코리아둘레길 약 4천500㎞ 중 남해안 길을 일컫는다.
남파랑길 중 순천시 해안을 따라 난 도보여행 길이 61코스와 62코스이다.
순천만습지를 끼고 도는 61코스는 남파랑길 중에서도 인기 구간이다.
세계 어느 관광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멋진 자연경관을 간직한 데다 갯벌 옆으로 난 길이 거의 평지여서 걷기에 수월하기 때문이다.
걷기 여행자들이 순천만의 자연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사와 함께 걷는 씨워킹(SEA WALKING) 프로그램이 봄, 가을에 진행된다.
◇ '똥섬'의 와온해변과 용산전망대…붉은 노을의 추억
누구나 기억에 남는 노을 장면을 간직하고 있으리라.
와온해변과 순천만습지 안에 있는 용산 전망대는 그런 추억을 선사한다.
소가 누운 형상이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 와온마을은 순천의 최남단에 위치한 해변 촌락이다.
앞바다에 작은 무인도가 있다. 작지만 이름이 대여섯 개에 이른다.
솔섬, 학이 납작 엎드린 모양이라는 뜻의 학섬, 밥상을 엎어놓은 것 같다는 데서 유래한 상섬, '모래가 모인다' 혹은 사기그릇을 엎은 모양이라는 의미의 사기섬 등이다.
'똥섬'으로도 불린다. 순천만에 새가 워낙 많고, 새들이 싼 똥이 쌓인 데서 비롯된 이름이었다.
순천만 생태의 풍요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섬 하나의 이름이 이렇게 다채로울진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상상력과 삶은 얼마나 풍부하고 느긋할까.
똥섬 뒤로 넘어가는 낙조의 붉은 빛으로 물드는 와온해변은 일몰 명소다.
와온해변에서 3∼4㎞를 걸으면 닿는 용산전망대에 서면 순천만습지의 참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갈대가 갯벌 위에서 둥근 군락을 이루며 자란다.
순천만의 갈대는 왜 동그랗게 모여 자랄까.
습지 자연생태관에 전시된 자료에 따르면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소용돌이가 생기고, 이어 군데군데 작은 언덕이 만들어진 뒤, 갈대가 360도 방향으로 뿌리를 뻗으며 사방으로 자라기 때문이다.
순천만습지에서 자라는 칠면초는 갈대 못지않은 신비를 연출한다.
칠면초의 이름은 체내 염분 농도에 따라 이 식물의 색깔이 1년 동안 일곱 번 바뀌는 데서 유래했다.
봄에 녹색으로 시작해 여름, 가을을 거치면서 연노랑, 주황색 등으로 변하다 가을이면 갯벌을 붉은 자줏빛으로 물들인다.
'갯벌의 단풍'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가을에 용산전망대에 오르면, 눈이 시리도록 하얗게 반짝이는 은빛 갈대 물결 사이로 갯골을 따라 퍼져 있는 붉은 칠면초 카펫이 신비롭다.
순천만에는 동천, 이사천, 해룡천의 물길이 모여 흘러드는데 이 물길들이 갯벌에 만드는 S자 모양 수로를 '갯골'이라고 부른다.
칠면초는 갈대, 모새달, 갯잔디, 퉁퉁마디와 함께 대표적 염생식물이다.
염생식물은 짠 바닷물을 견디며 자라는 식물을 말한다.
칠면초는 염분을 흡수했다가 낙엽처럼 잎을 떨어뜨리며 소금기를 몸 밖으로 내보낸다.
갈대는 땅속뿌리와 지하줄기만 염분을 흡수하고, 줄기 위로는 소금을 보내지 않는다.
국내에 서식하는 33과 135종 염생식물 중 16과 33종이 순천만에 살고 있다. 갯벌 중에서도 염생식물이 자생하고 있는 곳을 염습지라 한다.
염습지는 육지에서 내려오는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자연 정화조 구실을 한다. 순천만 염습지는 5.4㎢에 달한다.
◇ 물고기 맞아?…갯벌 위를 '걷고 뛰는' 짱뚱어
낮은 곳에 깃드는 저서동물들
와온해변에서 용산전망대까지 갯벌 옆으로 난 길을 걸으면 저서동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저서동물이란 낮은 곳에 사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물가 특히 바닷가 주변 갯벌에 서식한다.
순천만 갯벌에서는 짱뚱어, 말뚝망둥어, 칠게, 붉은발말똥게, 흰발농게, 대추귀고동, 가지게 등 다양한 저서동물을 만날 수 있다.
순천만의 입자 고운 펄갯벌에는 이들이 뚫어 놓은 작은 구멍들이 마치 송곳으로 콕콕 찔러놓은 것처럼 수없이 뚫려 있었다.
게 구멍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갯벌에 산소, 미생물 보금자리, 자연 밭갈이 효과를 제공하는 게 구멍은 갯벌의 숨구멍으로 통한다.
한국의 갯벌은 모래갯벌, 점토질이 많은 펄갯벌, 이 둘이 섞인 혼합갯벌로 나뉜다. 파도가 잔잔해 점토가 흩어지지 않고 바닥에 쌓이는 순천만 갯벌은 대표적 펄갯벌이다.
순천만 특산물인 짱뚱어는 헤엄만 치는 게 아니라 근육이 발달한 가슴지느러미를 이용해 갯벌 위를 마구 기어 다닌다.
속도가 빠를 때나 공중으로 점프하는 모습을 약간 과장하면 걷거나 뛴다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성싶다.
서·남해안 갯벌에 흔한 말뚝망둥어도 기어 다니는 모습이 비슷하다.
피부에 파란 점이 있으면 짱뚱어, 그렇지 않으면 말뚝망둥어인데 진흙을 잔뜩 뒤집어쓴 녀석들을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순천만습지
용산전망대에서 습지 입구 매표소로 향하는 구간은 초록색 갈대와 파란 하늘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갈대밭이 광활했다.
탐방객은 갈대밭에 설치된 데크 위로만 걸을 수 있다.
데크 바깥은 갯벌이거나 물인데 갈대가 빽빽이 자라고 있어 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다.
순천만이 세계적인 연안습지로 평가받는 것은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지역의 생태계가 잘 보존됐기 때문이다. '생태계의 보고'로 일컬어진다.
2006년 국내 연안습지 최초로 람사르 습지에 등록됐으며 2021년에는 충남 서천, 전북 고창, 전남 신안의 갯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습지의 전체 면적은 갯벌 23㎢, 염습지 5㎢를 합해 약 28㎢에 달한다.
세계 희귀 조류 48종을 포함해 250여 종의 새들이 이곳을 찾는다.
특히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의 국내 최대월동지이다.
흑두루미는 세계적으로 1만7천여 마리만 생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순천만을 찾은 흑두루미는 이의절반가량인 8천여 마리에 이르렀다.
◇ 현대 한국 문학의 기념비적 소설
'무진기행'의 실제 배경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김승옥(1941 ∼)의 소설 '무진기행'의 일부이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 후 문학적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감각적인 언어와 모더니즘적 기법으로 현대인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안개로 둘러싸인 '무진'이라는 공간을 통해 도시인의 분열된 자아와 고독, 방황을 다뤘다.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무진'의 실제 모델이 자기 고향인 순천만 일대라고 작가는 밝힌 바 있다.
현재 순천만습지에는 '무진교'라고 이름 붙여진 아치형 다리가 놓여 있고 김승옥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을 모아놓은 순천문학관이 있다.
소설은 작가가 직접 각색을 맡아, 영화 '안개'로 제작됐다.
지금은 고인이 된 신성일, 윤정희가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는 크게 흥행했다.
당시 16세로 데뷔해 영화 주제가 '안개'를 불렀던 정훈희는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에서 이 노래로 한국대중가요 사상 최초의 국제대회 수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흐리는 안개 자욱한 환상의 공간 '무진'을 누구나 가슴 속에 안고 살아갈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 바 있다.
당신의 무진은 어디인가.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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