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리
| 2026-09-26 09:00:05
(서울=연합뉴스) 장진리 기자 = 최근 방송계에서 서로 다른 욕망을 지닌 두 남자가 맞서거나 손을 잡는 이야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26일 방송계에 따르면 지난해 넷플릭스 '애마', '은중과 상연', '당신이 죽였다', '자백의 대가'처럼 시대극,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 여성 서사가 주목받았던 반면, 올해는 '브로맨스'(남성들의 우정)를 흥행 코드로 사용하는 드라마가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방영 중인 tvN '포핸즈'가 대표적이다. 배우 송강과 이준영이 주연한 이 작품은 음악 천재들이 모인 예술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두 남자의 우정과 경쟁을 그린다.
송강이 노력형 피아노 천재 강비오를, 이준영이 타고난 피아노 천재 최정요를 연기한다. 불우한 환경 탓에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 최정요와 어릴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강비오는 애정과 질투, 동경과 경쟁이 뒤섞인 묘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다.
드라마는 때로 로맨스의 문법을 빌려 두 사람의 우정을 표현한다. 강비오가 무대 공포증에 시달리는 최정요를 위해 연습실을 촛불로 가득 채운 장면, 지하철을 기다리던 최정요가 강비오의 등을 피아노 건반처럼 두드리며 연습하는 장면, 두 사람이 지하철에서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잠이 든 장면 등이 화제를 모았다.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호흡)가 입소문을 타면서 닐슨코리아 전국 시청률 3.4%로 출발한 이 작품은 7.9%까지 시청률을 끌어올렸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넷플릭스 '들쥐' 역시 두 남자가 서사의 중심에 선다. '들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긴 은둔 소설가 제문재(류준열 분)와 사채업자 노자(설경구)가 의문의 존재 '들쥐'를 쫓는 모습을 그린다.
제문재는 이름과 신분을 되찾기 위해, 노자는 잃어버린 돈을 회수하기 위해 들쥐를 추적한다. 과거 제문재가 노자를 상대로 사기를 벌인 탓에 두 사람은 원수나 다름없지만, 필요에 의해 억지로 손잡은 뒤 점차 서로에게 의지한다.
'들쥐'는 대립과 공조를 오가는 두 사람의 관계가 흥미를 자아내며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투둠이 집계한 비영어 쇼 1위에 올랐다.
남성 투톱의 무대는 국경도 넘는다. 연내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푸른길'은 손석구와 일본 배우 나가야마 에이타가 주연으로 나서, 한국과 일본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을 쫓는 두 남자 형사의 활약을 그린다.
동명의 한일 합작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국적도 수사 방식도 다른 두 형사의 공조가 핵심이다. 이 작품을 '온 스크린' 섹션을 통해 처음 공개하는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범인을 밝히는 과정만큼 흥미로운 것은 다른 듯 서로 닮은 두 형사의 호흡"이라고 소개했다.
2027년엔 야구장과 정치판을 배경으로 두 남자의 대결과 동행이 펼쳐진다.
내년에 편성된 SBS 야구 드라마 '풀카운트'는 프로야구 감독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이들의 경쟁을 그린다. 김래원이 가을야구 탈락 위기에 놓인 인기 구단 스타즈의 감독대행 황진호를, 박훈이 차기 감독 1순위로 꼽히는 프랜차이즈 스타 선수 출신 투수코치 조동희를 연기한다.
두 사람은 감독 자리를 놓고 한 치의 양보 없는 팽팽한 맞대결을 펼친다. 박진감 넘치는 야구만큼이나 더그아웃 안 두 남자의 수 싸움이 관전 요소다.
tvN '의원님이 보우하사'에서는 김윤석과 김선호가 세대를 뛰어넘은 콤비가 된다.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두 사람은 귀신이 돼 과거로 회귀한 6선 국회의원(김윤석)과 그의 아바타가 돼 정치판으로 뛰어든 9급 공무원(김선호)을 각각 연기한다.
원작에서도 두 인물은 끊임없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찰떡같은 호흡을 보여준다. 정치에 노련한 인물과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던 청년이 '영혼 동맹'을 맺고 권력의 중심으로 향하는 이야기가 최근 방송계의 흥행 코드가 된 사이다 같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방송가에서 남성 투톱물이 주목받는 이유는 '화제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한 명의 스타에게 흥행을 의존하는 위험을 분산하는 동시에 두 남성 배우의 인지도와 팬덤을 동시에 활용해 화제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장이 커지면서 장르물이 많아지는 최근 제작 환경에서 남성 투톱은 제한된 회차 안에서 강한 긴장감과 몰입을 이끌어야 하는 장르물과도 궁합이 좋다"며 "별도의 복잡한 설정 없이도 두 사람의 관계 변화만으로 대립, 배신, 공조 등의 서사를 밀도 있게 확장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스토리에 현실성과 강한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는 강점도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는 "최근 2∼3년간 유행했던 여성 서사가 주춤하고 브로맨스를 필두로 한 남성 투톱물이 돌아오는 추세"라며 "특히 장르물에서는 남성 투톱이 현실성 있고 공감대를 이루는 스토리를 그리기 좋다"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도 "남성 투톱은 뜨거운 의리 같은 정서나 극단적인 투쟁 등 강력한 서사를 그리기 좋다"며 "남녀 시청자들이 모두 선호하는 구성"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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