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
| 2026-03-24 08:38:08
'아파트' 윤수일 "팝 흉내론 성에 안 차…김치 냄새도 나야죠"
1977년 데뷔 '록 트로트' 시초…5월 세종문화회관서 50주년 콘서트
"차가운 건물에 러브 스토리 담은 '아파트', 일평생 최고의 곡"
"음악은 사회라는 수레에 실리는 것, 늘 시대 화두 고민하며 작업"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무턱대고 해외 팝과 록을 흉내만 내는 건 저 자신이 절대 용납하지 못했어요. 받아들이되 우리 것을 섞어내 모방이 아닌 재해석을 하려 했고, 이렇게 50년을 걷다 보니 '록 트로트'의 시초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원조 '아파트'로 유명한 가수 윤수일(71)은 1977년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데뷔한 이래 반세기에 걸쳐 록 사운드에 트로트 감성을 얹은 독특한 음악 색깔을 구축했다.
올해로 데뷔 50년째를 맞은 그는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한 인터뷰에서 "팝송 맛도 나면서 걸쭉한 김치, 된장 냄새가 나는 음악을 선호한다"며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고 말했다.
그의 방향성은 1982년 시대를 가로지른 국민송 '아파트'를 우뚝 세웠다. 이 곡은 2024년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APT.)가 글로벌 히트를 하면서 다시 주목받았고 두 곡을 이어 붙인 패러디 영상이 유튜브 등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두 곡은 '구축', '신축' 아파트로 불렸고 윤수일에겐 '재건축 조합장'이란 별칭도 붙었다.
이런 반향으로 그는 2024년 KBS 연말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이브, NCT 127 등 전 출연자와 함께 '아파트'를 열창하며 엔딩 무대를 장식했다. 오는 5월 1일에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데뷔 50주년 기념 콘서트 '디 오리지널'(THE ORIGINAL)을 열고 활동 반세기를 집대성한다.
윤수일은 "곡을 쓰고, 편곡하고, 음반을 내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할수록 음악이란 우주처럼 무궁무진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며 "연구하면 할수록 음악을 더 사랑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새 50년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주한 미군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윤수일은 울산에 살던 어린 시절 어머니 머리맡에 놓인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비틀스와 엘비스 프레슬리 등 당대 최고 록 스타의 음악을 들으며 가수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친구들과 밴드 동아리를 만들어 히식스·키보이스 등 국내 1세대 그룹사운드의 노래를 연주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윤수일은 이 시기에 대해 "음악에 잠식돼 있었다. 비틀스가 제일 큰 영향을 줬다"고 회고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방 하나를 메고 상경한 그는 함중아·함정필 등이 소속된 그룹사운드 골든 그레이프스에 악기와 커피를 나르는 헬퍼(도우미)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함중아가 탈퇴하고 1976년 윤수일이 팀에 합류하며 그의 음악 여정이 시작됐다.
골든 그레이프스는 1977년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 출전했는데, 윤수일은 여기서 유명 작곡가 안치행의 눈에 띄어 '윤수일과 솜사탕'이라는 그룹으로 '사랑만은 않겠어요'를 불러 데뷔하게 된다.
"첫 앨범을 위해 한 10곡을 만들었는데 그중에 유일한 트로트였던 '사랑만은 않겠어요'가 제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그런데 밴드 멤버들은 기존 음악 색깔과 달라서 이 곡을 반대했죠. 어쩔 수 없이 혼자 TV에 나가서 노래를 몇 번 부르니 대중의 반응이 오더군요."
윤수일은 "결국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제가 가수가 된 것은 행운이라고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사랑만은 않겠어요'가 히트한 1978년 암 선고를 받았다. 노래가 인기를 끌면서 모친이 입원한 서울 세브란스 병원과 무대를 오가는 정신 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이로부터 6년을 더 보냈고, TV에 아들이 나올 때마다 기뻐했다.
윤수일은 1981년 '윤수일밴드'로 1집을 내며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그는 이후 록과 트로트 감성, 시티팝을 아우르며 '떠나지 마', '제2의 고향', '황홀한 고백', '환상의 섬', '아름다워' 등의 히트곡을 냈다. 대부분의 노래를 직접 작곡하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역량도 보여줬다.
무엇보다 그를 대중에게 스타로 각인시킨 노래는 2집에 수록된 메가 히트곡 '아파트'다. '띵동띵동' 하는 인상적인 초인종 소리와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로 시작하는 이 곡은 40년 넘도록 야구장과 대학가, 노래방 등 전국 각지에서 불렸다.
이 곡의 모티브가 된 아파트는 잠실한강공원 일대 단지라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잠실대교를 건너가다 보면 당시 한강공원에는 갈대가 춤을 추는 모습이 보였고, 그 뒤로는 아파트가 눈에 띄었죠. 차갑고 딱딱해 보이던 이 아파트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했죠. 그러다가 '군대를 전역하니 연인이 연락도 없이 이민을 떠나 초인종만 띵동띵동 눌렀다'는 친구 이야기를 듣고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윤수일은 "딱딱한 아파트에 슬프고도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를 결합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가 낭만의 공간으로 그려낸 아파트는 당시 국민적 관심을 얻는 '새 주거문화'의 상징이었고, 44년이 지난 지금도 욕망과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윤수일은 이 노래의 긴 생명력을 예상했느냐는 물음에 "세상의 흐름을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집은 의식주 가운데 하나가 아니냐. 아파트라는 주거 문화는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그는 "음악은 사회라는 '수레'에 실리는 것이다. 시류와 대중을 무시하고 저 혼자만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 수는 없다"며 "늘 시대의 화두를 고민하며 작업을 해 나갔고, 그 덕분에 주거 문화 개선과 아파트 단지가 뉴스를 장식하던 시절 '아파트'라는 일평생 최고의 곡도 나올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윤수일은 5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약 2시간에 걸쳐 '아파트'와 '황홀한 고백' 등 히트곡을 선보인다.
그는 "세종문화회관이라는 공연장의 상징성이 주는 부담감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저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기에 관객이 좋아할 만한 노래를 골라 잘 연출해 감동을 드리는 게 제1의 목표다. 가능한 대중에게 알려진 곡들을 부를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통해 대중 여러분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며 "앞으로도 체력이 닿는 한 꾸준히,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음악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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