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경
| 2026-05-21 07:00:05
[컬처&레저] '개' 부러운 보라카이
(보라카이=연합뉴스) 이동경 기자 = 야트막한 민트 빛 바다가 4월의 햇살을 머금은 채 나른하게 일렁이는 필리핀 보라카이의 화이트비치.
눈부신 순백색 산호모래가 깔린 해변의 야자수 그늘에 한 견공이 드러누워 모래찜질하고 있다.
꾀죄죄한 외모로 봐서 외국에서 주인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휴양 온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세계 3대 해변에 널브러져 휴식을 즐기는 녀석은 알고 보니 지역의 터줏대감이었다.
한참을 뒹굴다가 오렌지빛 석양을 뒤로하고 어슬렁어슬렁 해변을 빠져나갔다.
'개부럽다'는 속된 표현이 딱이었다.
보라카이의 거리나 해변에는 '마실 다니는' 동네 개들이 많다.
도로 주변이나 심지어 고급 호텔 정문 앞에도 느긋하게 앉아있다.
택시 기사는 길 건너는 것을 기다려주고, 호텔 관리인들은 쫓아내지 않는다.
다들 순한듯하다. 4박5일의 휴가기간 짖는 소리는 듣지도 못했다.
이들은 시골 민가의 '식구'격이다. 겉보기에 유기견으로 보여도 모두 주인이 있다.
보라카이 주민들은 이들을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실컷 놀다가 저녁에는 대부분 집으로 돌아간다.
가두지 않아도 곁에 있고, 통제하지 않아도 떠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언제부터인가 키우는 개를 '반려견'으로 부르면서 인간에 준하는 존재로 격상시켰다. 반려인은 1천500만명을 웃돈다고 한다.
개식용금지법도 통과됐고, 동물보호법상 반려견을 굶겨 죽이면 징역형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려자에 준하는 호칭을 하면서도 손에 쥔 목줄을 놓지는 못한다.
목줄도, 입마개도 없이 해변을 어슬렁거리다 저녁이면 제 발로 돌아오는 녀석들에게 법의 보호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들의 일상이야말로 반려의 진정한 의미를 실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장소가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가고 싶어 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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