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후기 시화집 '파한집', 본래 이름은 '파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주장…"'보한집'은 원래 '속파한' 혹은 '보한'"

박상현

| 2022-04-05 07:00:03

▲ 1659년 간행된 '파한집'(왼쪽)과 '보한집' 초간본. 1659년 간행된 '파한집'에는 '파한집'(破閑集)이라는 글자가 보이지만,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간행된 '보한집'에는 '파한집'이 아닌 '파한'(破閑)만 있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동인지문오칠 '속파한'(續破閑)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려시대 후기 시화집 '파한집', 본래 이름은 '파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주장…"'보한집'은 원래 '속파한' 혹은 '보한'"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고려시대 문인 이인로(1152∼1220)가 저술한 시화집이자 고전문학 명저로 꼽히는 '파한집'(破閑集)의 본래 명칭이 '파한'(破閑)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자(1188∼1260)가 파한집을 보완해 1254년 완성한 시화집인 '보한집'(補閑集)도 원래 이름은 '속파한'(續破閑)이나 '보한'(補閑)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한문학자인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파한집과 보한집은 후대에 붙인 이름이고, 원래 저술 명칭은 '파한'과 '보한'"이라며 "후대에 '집'(集)이라는 글자를 붙여 문집처럼 보이게 만드는 왜곡이 일어났고, 그 왜곡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5일 밝혔다.

안 교수는 문헌을 두루 살펴 두 시화집의 명칭이 변해온 과정을 추적했다. 파한집과 보한집 초간본(初刊本·가장 처음에 간행된 책)은 국내에 없고, 중국과 일본에만 존재한다고 알려졌다. 파한집은 1260년, 보한집은 이보다 약간 앞선 1255년 무렵 간행됐다. 파한집이 보한집보다 먼저 작성됐지만, 간행 시기는 보한집이 이르다.

그는 중국 국가도서관에 있는 보한집 초간본을 분석해 파한집과 관련된 대목이 모두 '파한'으로 기록됐다고 강조했다.

이장용(1201∼1272)이 쓴 보한집 초간본 발문에도 "이인로가 평소 적바림해 둔 것을 정리해 적어 대강 평론하고 '파한'이라 이름했다"는 문장이 있다.

안 교수는 파한집을 인용한 가장 오래된 저술인 보한집에 '파한집'이 아닌 '파한'만 등장하므로 파한집의 명칭은 '파한'이 분명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보한집은 파한집과 똑같은 운명으로, 책명도 같은 방식으로 짓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장용의 발문에는 책 이름이 '보한'으로 기록됐다.

안 교수는 보한집이 본래 '파한집을 잇는다'는 의미의 '속파한'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자는 책명을 '속파한'으로 보고했으나, 책을 받아본 무신정권 집권자 최항과 측근 막료는 생각이 달랐다"며 "파한집에 불만을 지녔던 그들은 파한의 계승을 뜻하는 '속파한'보다 파한의 보완을 의미하는 '보한'으로 책명을 정하고 싶어했다"고 부연했다.

'속파한'이라는 책명은 고려 말기 문신 최해가 편찬한 '동인지문오칠'과 조선 초기인 1478년 왕명에 따라 편찬한 '동문선'에서 확인된다고 안 교수는 강조했다.

그렇다면 두 저술의 명칭은 어떤 연유로 바뀐 것일까.

안 교수는 변화의 시초로 조선 문종 원년인 1451년 완성된 '고려사'를 지목했다. 고려사의 이인로와 최자 열전에는 각각 '파한집'과 '속파한집'이 유통됐다는 내용이 있다.

이어 1492년에는 파한집과 보한집 목판을 다시 만들어 간행하는 재간(再刊) 작업이 진행됐는데, 이때 '집'(集)이 붙으면서 명칭 왜곡이 일어났다고 안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두 저술의 재간본도 국내에 현존하지 않지만, 성종실록 1493년 기사 중 "파한·보한 등의 집(集)을 내렸다"는 상소문 문맥을 봤을 때 '파한집'과 '보한집'으로 찍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분석했다.

현재 국내에 있는 가장 오래된 파한집과 보한집은 재간본을 바탕으로 1659년 다시 찍은 책이며, 모두 '파한집'과 '보한집'으로 돼 있다.

안 교수는 "보통 책명에는 녹(錄), 기(記), 집(集), 사(史) 같은 글자가 들어간다"며 "'파한'과 '보한'은 책명만으로는 어떤 책인지 알 수 없어서 '집'을 붙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와서 본래 명칭을 회복해 사용하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저술의 성격상 '집'보다는 '녹'을 붙인 '파한록'(破閑錄)과 '보한록'(補閑錄)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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