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이후 잊힌 역사…독일의 대한제국 공사관 실체 찾았다

서영희 교수 연구팀·국립고궁박물관, 공사관 건물 주소 최초 확인
그간 개설 여부 확인 안 돼…공공 주소록·신문 기사 등서 실마리
120여 년 만에 존재 드러난 '외교 현장'…"심층 연구·조사 ??

김예나

| 2026-08-12 08:11:00

▲ 주독일 대한제국 공사관 추정 터 베를린 레겐스부르크(Regensburger) 거리에 있는 건물 모습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주독일 대한제국 공사관 추정 터 베를린 레겐스부르크(Regensburger) 거리에 있는 건물 모습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주독공사 민철훈 신임장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올해 7월 독일 현지 조사 모습 ['한국 근대 기록물의 아카이빙과 활용 방안' 연구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유럽 현지 조사에 참여한 연구진 ['한국 근대 기록물의 아카이빙과 활용 방안' 연구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 전후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런던 주영대한제국 공사관 동판 [연합뉴스 자료사진]
▲ 서영희 한국공학대 교수 ['한국 근대 기록물의 아카이빙과 활용 방안' 연구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독일국에 주재한 특명전권공사 민철훈을 겸하여 오스트리아국에 주재하도록 하라고 명하였다."(고종실록 1901년 3월 12일 기록)

19세기 말 열강의 각축 속에서 고종(재위 1863∼1907)은 근대적인 국제 외교의 중요성에 눈 뜬다.

고종은 1896년 러시아 니콜라이 2세 황제의 대관식에 민영환(1861∼1905)을 중심으로 한 사절단을 보낸 뒤 주요 국가를 상대할 '외교관'을 두고자 했다.

이에 따라 1887년에는 박정양(1842∼1905)을 미국 특명전권공사로 파견했고,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는 민철훈(1856∼1925)을 독일과 오스트리아 공사로 임명했다.

그 결과 미국과 유럽 곳곳에는 대한제국의 외교공관이 개설돼 운영됐다.

1905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 이후 강제로 철수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대한제국 공사관 존재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관련 자료나 기록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120여년 만에 실체가 드러나 주목된다.

서영희 한국공학대 교수가 이끄는 근대 기록 연구팀과 국립고궁박물관은 독일 베를린에서 주독 대한제국 공사관이 있었던 건물 4곳의 위치를 찾았다고 12일 밝혔다.

독일 내 대한제국 공사관 흔적을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은 1889년 미국 워싱턴 D.C.의 로건 서클(Logan Circle) 지역에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을 설치했으며 영국, 프랑스 등에도 상주 공관을 운영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유럽의 경우, 일제의 공사관 강제 철수에 항거하다 순국한 이한응 열사(1874∼1905)가 근무한 주영 공사관의 존재만 알려져 있다.

독일에서는 실제로 공관이 설치됐는지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서영희 교수는 "대한제국은 근대적 주권 국가로 나아가길 바라며 각국에 외교관을 파견하고 상주 공관을 운영했으나, 독일은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 교수 연구팀과 국립고궁박물관이 1900년대 초 베를린의 공공 주소록에서 찾아낸 대한제국 공사관 주소는 총 4건이다.

이 가운데 3곳은 주소는 있으나 예전 건물은 사라진 것으로 보이며, 레겐스부르거(Regensburger) 거리에 있는 1곳은 외관상 기존 건물이 남아있다고 한다.

서 교수는 "건물을 매입하지 않고 임대했을 경우 이전은 빈번했을 것"이라며 "(공사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바로 옆 건물에 준공 연도가 1902년이라고 돼 있어 원형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서 교수는 '한국 근대 기록물의 아카이빙과 활용 방안 연구'(연구 책임자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를 위해 유럽 현지를 조사하던 중 주독 공사관의 존재를 찾았다.

오랜 기간 잊힌 역사가 드러나는 데 도움을 준 건 국립고궁박물관 연구진이었다.

내년 '대한제국' 특별전을 준비하기 위해 출장에 동행한 박물관 관계자들은 1900년대 신문 기사와 공문서, 공공 주소록을 샅샅이 훑어 공사관의 주소를 찾았다.

아카이빙 연구팀은 독일 외무부 정치문서보관소에 있던 대한제국 관련 외교 문서, 공사관과 관련된 거래 문서 등을 하나하나 찾으며 주소를 검증했다.

서 교수는 "1900년대 초 사진, 베를린 시내 지적도 등 건물 이력을 추가로 확인해야 한다. 외관상 당시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내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공사관의 실체가 드러난 만큼 심층 연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유럽 각국에 설치한 공사관은 대한제국이 펼친 자주 외교 노력이 깃든 역사적 공간으로서 가치가 크지만, 관련 조사나 연구는 부실한 상황이다.

2022년 국가유산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 시기에 설치된 공사관 6곳을 확인한 결과, 일본·중국 2곳은 건물이 이미 철거됐다.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공사관은 건물 외관은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영구임대주택이나 상가 혹은 아파트로 쓰이고 있어 사실상 접근이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주미 공사관 1곳만 정부가 매입해 역사 전시관으로 활용 중이다.

앞서 국가유산청은 해외에 있는 문화유산을 보호·활용하고자 'K-공유유산' 제도를 도입했으나, 공사관 관련 고증 조사나 심층 연구는 이뤄지지 않았다.

허민 청장은 최근 업무 보고에서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국외 사적지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구상을 내놨으나, 구체적 대상은 밝히지 않았다.

서 교수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주독 공사관 건물의 실체가 드러난 만큼 건물 내부에 대한 심층 조사가 필요하다"며 후속 연구·조사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 연구팀은 10월 16∼17일 서울대 교수회관 제4회의실과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국제 학술대회에서 조사 성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은 대한제국 외교를 다룬 '왕실·황실 유물 연구총서'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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