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래
| 2026-09-24 08:10:06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빛으로 쏟아지는 숫자, 신체를 관통하는 전자음, 끝없이 확장되는 데이터의 흐름.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료지 이케다(60)가 제주에서 신작을 처음 공개했다.
제주 하우스오브레퓨즈에서 24일부터 시작한 개인전 '료지 이케다'는 그의 신작을 포함해 새 버전의 작품, 국내 최초 공개작 등 영상·사운드·설치를 아우른다. 약 1천㎡ 규모 전시 공간의 디자인과 작품 시퀀스를 작가가 직접 구성했다.
이케다는 1966년 일본 기후에서 태어나 파리와 교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곡가이자 미디어 아티스트다.
그는 수학적 정밀성과 미학을 토대로 소리 그 자체, 빛으로서의 시각 요소, 물리 현상과 수학적 개념을 탐구해 왔다. 이를 정교한 오디오비주얼 퍼포먼스와 설치로 구현하며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작업으로 국제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도쿄도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뉴욕 파크 애비뉴 아머리, 타이베이 시립미술관, 런던 180 스튜디오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2025년에는 애틀랜타 하이 미술관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 모나(MONA)의 영구 설치작 '스펙트라'(spectra), 시드니 달링 하버의 '데이터.스케이프'(data.scape)를 제작했다.
퍼포먼스 '슈퍼포지션'(superposition)은 2012년 초연 뒤 런던 바비칸센터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을 순회했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무한'과 '코드'를 물질적 감각으로 치환한 신작들이다.
'디 이리듀서블'(the irreducible)은 발광다이오드(LED) 벽면을 수백만 자리 숫자로 채우고, 거울 바닥에 이를 끝없이 반사하는 오디오비주얼 설치다.
화면의 숫자에 규칙이 있는지, 실제 무작위인지 판별하기 어려운 상황을 통해 무한과 무작위, 질서의 경계를 흔든다. 관객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수의 규모와 마주하며 '수학적 숭고'를 경험하게 된다.
'디 이리듀서블 [nº13]'은 100만 자리 이상의 하나의 수를 35㎜ 영화 필름에 인쇄해 라이트박스 안에 설치한 작업이다. 작품 제목의 '이리듀서블'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작품 속 숫자가 실제 더 나눌 수 없는 수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이케다는 이처럼 인간이 끝까지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한 숫자를 필름에 담아, 숫자를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빛을 통해 마주하는 이미지로 바꾼다.
'스핀'(spin)은 레이저 빔으로 관람객 머리 위 공간에 빛의 선을 그리는 설치 작품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빛의 점들이 잔상을 남기면서, 관객의 눈에는 하나의 입체적인 고리나 타원형 궤도가 공중에 떠 회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형상은 안과 밖이 뒤집히는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시킨다. 이케다는 실제로는 점들의 빠른 움직임일 뿐인 레이저 빛을 연속된 선으로 인식하게 하는 시각적 착시를 통해, 빛과 지각의 관계를 탐구한다.
이케다가 2000년께부터 이어온 기하학적 형태와 분석적 선 드로잉에 관한 작업의 연장선이다.
'더 크리티컬 패스'(the critical paths)는 천장 LED 스크린과 양쪽 거울 벽으로 만든 약 25m 길이의 통로형 오디오비주얼 설치다.
'타르투대 유전체연구소'(Institute of Genomics, University of Tartu)가 제공한 방대한 유전체 데이터가 천장을 따라 흐르고, 관람객은 인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데이터의 흐름 속을 걸어간다.
'크리티컬 패스'는 반드시 제때 통과해야 하는 핵심 경로를 의미한다. 이케다는 이를 한 선택이 다음 선택으로 이어져 개인의 삶을 만들고, 인류의 진화 역시 수많은 갈림길을 거쳐 이뤄졌다는 의미로 확장한다.
전시는 내년 1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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