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두
| 2021-08-18 08:05:01
침묵의 방관과 행동하는 양심 중 무엇을 선택할 건가
심리학자 캐서린 샌더슨의 실천적 지침서 '방관자 효과'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2017년 4월, 고령의 한 남성이 항공기 좌석에서 거칠게 끌려 나가는 영상이 SNS를 중심으로 퍼지며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69세였던 이 남성은 예약을 과도하게 받았다는 이유로 좌석 포기를 종용한 항공사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자 공항 보안국 요원들이 그를 강제로 끌고 나갔고, 이 과정에서 그는 코뼈와 이빨 두 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영상으로 이 사건을 접한 많은 사람은 그가 받은 부당한 대우에 집중하며 분노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대다수의 승객은 그 상황을 휴대 전화로 촬영해 나중에서야 SNS에 올려 분노를 나타냈을 뿐, 사건 당시엔 물리력을 행사하는 보안국 요원을 제지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는 점이다. 상황을 그저 방관했을 뿐 실제 행동은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우리는 흔히 도움이 필요한 타인을 목격하더라도 '나 말고 누군가 나서겠지…'라며 자신이 나서서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곤 한다. 정신 분석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책임 분산으로 인해 나타나는 '방관자 효과'라고 부른다.
심리학자인 미국 앰허스트 대학교 캐서린 샌더슨 교수는 지극히 개인적인 심리적 기제이면서, 동시에 전 세계를 뒤덮고 사회적 이슈가 된 침묵과 방관, 무관심을 불러온 나비 효과를 보며 "왜 이럴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졌다. 그리고 이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실천적 지침서 '방관자 효과'를 집필했다.
'당신이 침묵의 방관자가 되었을 때 일어나는 나비 효과'를 부제로 한 이 책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을 비롯해 수많은 심리학 연구와 실험, 신경 과학적 뇌 반응 측정을 통해 행동하기보다 침묵을 선택하게 되는 인간 본성을 과학적으로 파헤친다.
더불어 다양한 사례를 들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침묵이 모여 사회적으로 심각한 부정적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진단과 경고에 머물지 않고 본성을 거슬러 행동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사례도 소개하면서 실제적 변화를 가져올 방법을 조언함으로써 불의와 혼돈을 넘어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실천적 지침들을 일러준다.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범죄와 악행을 저지른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의 행위는 다수에 의해 쉽게 무시되거나 간과됐다. 범죄와 악행이 실현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악인들의 개인적 결정이 아닌, 다수의 선한 사람들이 침묵하지 않고 나서서 행동하지 못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책은 이런 점에 주목해 이른바 '괴물'을 찾아내 막는 것만으론 끔찍한 행동을 결코 막을 수 없다고 경계한다. 선한 사람을 나쁜 선택으로 이끄는 원인을 찾아내고 주변에서 목소리를 내야 그릇된 행동을 막거나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는 거다.
이와 관련해 불의와 혼돈이 지배하고 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반세기 전 선각자의 연설이 떠오른다. 비폭력 인권 운동을 주창했던 마틴 루서 킹 목사는 1963년 8월 워싱턴 DC의 링컨 추모관 앞에서 진행된 평화행진대회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통해 인종차별의 철폐와 인종 간의 공존을 강력히 호소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깨어나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창조되었다는 명백한 이념을 신봉한다'는 미국의 신조 안에 깃든 참뜻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내 아이들이 자신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꿈입니다."
침묵과 방관이 아닌 '행동하는 양심'이었던 킹 목사는 1968년 극우파 백인 제임스 얼 레이의 총에 맞아 암살됐으나, 그의 행동하는 양심은 연쇄적 나비 효과를 낳으며 미국은 물론 세계의 인권운동사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침묵의 방관자가 될 것인가, 용기 있는 목소리로 행동하는 양심이 될 것인가? "가장 큰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외침이 아닌,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다"라고 갈파했던 킹 목사의 외침이 다시금 절실하게 들려오는 이유다. 2006년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MeToo) 운동'이 전 세계로 번지며 큰 파장을 낳은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박준형 옮김. 쌤앤파커스. 364쪽. 1만7천원.
(끝)
[ⓒ K-VIB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