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타향살이 마침표…원주 거돈사지 승탑, '고향 땅' 밟나

국가유산위원회, 보물 '원공국사탑' 이전 계획·정비 안건 '가결'
일본인 집·경복궁 거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구체적 일정 미정

김예나

| 2026-08-19 07:11:01

▲ 보물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보물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보물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세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보물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옛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리건판 자료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사적 '원주 거돈사지'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국립중앙박물관 내 탑 위치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발간한 2019 국가지정 건조물문화재 정기조사 보고서에 실린 사진 [국가유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일제강점기 이후 타향살이를 한 고려시대 승려 원공국사 지종(930∼1018)의 사리탑이 '고향 땅'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19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국가유산위원회는 지난달 열린 건축문화유산 분과 회의에서 보물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이전을 위한 세부 계획과 이전 예정 지역의 정비 사업을 심의해 가결했다.

안건은 서울에 있는 원공국사탑을 옮겨 강원 원주로 옮기는 계획 전반을 담았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원공국사탑이 원래 있었던) 원주로 옮기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일정이나 시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주 거돈사는 신라 후기인 9세기경 처음 지어져 고려시대에 크게 확장했으며, 조선 전기까지 이어졌다고 알려진 사찰이다.

거돈사 터에 남아 있었던 사리탑은 원공국사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보물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와 함께 1025년 무렵 거돈사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이 운영하는 국가유산포털은 "고려 전기의 대표적인 팔각(형태의) 사리탑"이라며 "조형의 비례가 좋고 중후한 품격을 풍긴다"고 설명하고 있다.

천 년의 시간을 간직한 원공국사탑은 오랜 기간 떠돈 사연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이 사리탑은 일제강점기에 어느 일본인의 집에 소장돼 있다가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1963년 보물로 지정됐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을 이은 국립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신) 소장 유물이 된 뒤에는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옮기면서 함께 이동했다.

현재는 박물관 경내 야외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있다.

보통 승탑(僧塔·고승의 사리를 안치한 탑)과 탑비는 짝을 이루는데 원공국사탑의 경우, 원주에 있는 탑비와 100년 가까이 떨어져 있는 셈이다.

원래 사리탑이 있던 자리에는 국가무형유산 석장 이재순 보유자가 작업한 재현품이 설치돼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주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원공국사탑을 비롯해 원주에 있었던 주요 문화유산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오랜 협의 끝에 최근 결실을 본 게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다.

과거 법천사 터에 있었던 지광국사탑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처음 반출된 이후 서울 명동, 일본 오사카, 경복궁을 거쳐 2024년 마침내 고향에 돌아갔다.

탑 부재의 보존 처리와 복원 공사를 거쳐 113년 만의 '귀향'이었다.

국가유산청과 원주시, 국립중앙박물관 등은 지광국사탑에 이어 원공국사탑의 제자리 찾기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하면서 세부 계획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향 땅을 밟기까지 과정은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전이 확정되면 무게가 10t(톤)이 넘는 원공국사탑 부재를 모두 해체한 뒤 원주로 옮겨 다시 세워야 한다. 앞서 세운 재현탑 역시 해체해 보관처를 정해야 한다.

구체적인 계획은 추가 협의를 거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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