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물열전](29) 무슬림형제단의 논쟁적 창립자 알반나

이슬람을 국가 운영 원리로 재해석…교육·복지 앞세운 사회 개혁
1948년 조직 불법화 두달 만에 피살…'정치 이슬람' 논란 진행형

박세진

| 2026-07-18 08:00:10

▲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창립자 하산 알반나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 2006년 11월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알반나 탄생 100주년 행사 모습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 2006년 11월 요르단 암만에서 열린 알반나 탄생 100주년 행사에서 무슬림형제단 지도자가 연설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 2013년 7월 1일 카이로 소재 무슬림형제단 본부가 시위대 공격을 받은 뒤 한 시민이 이집트 국기를 흔들고 있다. 같은 해 9월 카이로 법원은 무슬림형제단 활동을 금지하고 자산 몰수를 명령했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 알반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무슬림형제단 지도자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현대 중동 정치를 움직여온 이슬람주의(Islamism)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의 창립자 하산 알반나(1906~1949)다.

그는 이슬람을 개인의 신앙을 넘어 국가와 사회를 움직이는 원리로 재해석해 현대 이슬람주의의 토대를 놓은 인물이다.

이슬람주의는 이슬람 원리를 정치와 국가 운영에 구현하려는 사상과 운동을 말한다.

1906년 이집트 북부 알마흐무디야에서 태어난 알반나는 시계 수리공이자 하디스 연구자였던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하디스는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슬람 경전인 쿠란을 배우고 이슬람 전통 교육을 받으며 종교적 신념과 사회개혁 의식을 함께 키웠다.

교사 양성 고등교육기관인 다르 알울룸(Dar al-Ulum)을 졸업한 뒤 교사로 임용돼 수에즈운하 인근 도시 이스마일리아에 부임했다.

당시 이집트는 명목상 독립국이었지만, 영국이 군사와 경제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었다. 운하 지역은 외국 자본과 서구 문화가 빠르게 스며들고 있었다.

알반나는 이러한 현실을 단순한 식민 지배가 아니라 이슬람 사회의 도덕성과 공동체가 흔들리는 위기로 인식했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무력 혁명이 아니라 학교와 교육, 복지 활동을 통해 사회를 아래에서부터 바꾸려는 대중운동이었다.

1928년 알반나는 운하회사 노동자 6명과 함께 무슬림형제단을 창설했다.

출발은 작은 종교모임에 불과했지만, 목표는 분명했다. 그는 "이슬람은 종교일 뿐만 아니라 국가이며 사회이고 법이며 문명"이라고 선언하며, 종교와 현실을 분리하지 않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

그의 구상은 정치권력 장악에 앞서 이슬람적 가치에 기반한 사회를 먼저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무슬림형제단은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지역 공동체의 거점으로 삼고 학교와 병원, 직업훈련소, 복지시설 등을 운영하며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렸다.

국가의 손길이 닿지 않는 빈민층과 노동자들에게 교육과 의료, 생활 지원을 제공하면서 조직은 빠르게 세력을 넓혀 갔다. 1940년대 후반에는 전국에 수천 개 지부를 거느린 방대한 사회운동으로 성장했다.

이집트 역사상 그처럼 짧은 기간에 폭발적인 조직력을 보여준 민간 단체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영향력이 커질수록 논란도 함께 커졌다. 영국 식민 통치와 팔레스타인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면서 조직 내부에는 비밀 군사조직이 만들어지고, 일부 조직원들이 폭력 사건과 정치적 암살에 연루됐다.

1948년 12월 이집트 정부를 이끌던 누크라시 파샤 내각은 무슬림형제단을 불법화했고, 알반나는 도피 생활에 들어갔다.

이듬해인 1949년 2월 카이로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은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42세를 일기로 숨졌다.

당시 정부 기관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사건의 진상은 지금까지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알반나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사후에도 그의 사상은 중동 이슬람권에 한층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무슬림형제단은 중동 각국으로 확산했고, 정치 이슬람을 의미하는 이슬람주의의 대표적인 조직으로 자리 잡았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진 뒤에는 무슬림형제단 출신 무함마드 무르시가 이집트 최초의 민주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며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군부 쿠데타로 무르시 정권이 축출되면서 무슬림형제단은 다시 불법화됐고, 지금도 이집트에서는 활동이 금지돼 있다.

후대 사상가들의 해석을 거치면서 알반나의 사상은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했고, 일부는 더욱 급진적인 이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알반나는 지금도 존경과 비판을 동시에 받는다.

사회복지와 교육을 통해 공동체를 재건하려 했던 종교개혁가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종교를 정치의 중심에 놓는 이슬람주의의 문을 연 인물이라는 지적이 공존한다.

알반나가 창설한 무슬림형제단 역시 지금도 국가마다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합법적인 정치·사회단체로 활동하지만, 여러 나라에서는 불법단체로서 활동이 금지돼 있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알반나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현대 중동 정치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며 "그의 가장 큰 유산은 특정 정당이나 조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슬람을 개인의 신앙을 넘어 사회와 국가를 운영하는 원리로 체계화하고 이를 대중운동으로 조직했다는 데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오늘날 중동 각국에서 정치 이슬람을 둘러싼 갈등과 논쟁은 형태는 달라졌지만, 상당 부분 알반나가 던진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며 "알반나는 20세기 초의 인물이지만, 그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끝)

[ⓒ K-VIB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