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인물열전] (28) '이집트 인디애나 존스' 자히 하와스

피라미드·투탕카멘 쉽게 풀어낸 스타 학자…이집트학 상징 인물
문화유산을 국가 경쟁력으로…약탈당한 유물 환수 국제 여론전도

박세진

| 2026-07-11 08:00:07

▲ 이집트 고고학의 상징, 자히 하와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 2009년 1월 촬영된 기자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 무덤 속 유골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 2009년 6월 이집트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안내하는 자히 하와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 2010년 3월 미국 워싱턴 내셔널지오그래픽협회에서 열린 이집트 고대 유물 반환식에서 발언하는 자히 하와스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 2025년 1월 이집트 룩소르 데이르 알바흐리에서 새로 발견된 고대 암굴 무덤을 취재진에게 설명하는 자히 하와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프리카인물열전] (28) '이집트 인디애나 존스' 자히 하와스

피라미드·투탕카멘 쉽게 풀어낸 스타 학자…이집트학 상징 인물

문화유산을 국가 경쟁력으로…약탈당한 유물 환수 국제 여론전도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이집트 고대 문명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얼굴이 있다.

갈색 페도라 모자를 눌러쓴 고고학자 자히 하와스(79) 박사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를 연상시키는 그의 모습은 현대 이집트 고고학의 상징이 됐고, 세계인들에게 고대 이집트를 가장 널리 알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1947년 나일강 삼각주 다미에타에서 태어난 하와스의 어린 시절 꿈은 고고학자가 아니라 변호사였다. 알렉산드리아대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신설된 그리스·로마 고고학 과정으로 전공을 바꿨다.

졸업 후에도 외교부와 관광부, 문화부 산하 기관 취업에 잇따라 도전할 만큼 고고학자의 길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집트 유물청(EAO)에 들어간 그는 기자(Giza) 피라미드 발굴 현장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모래 속에서 발견된 한 로마시대 조각상의 먼지를 털어내다가 아름다움에 매료되면서 고고학을 천직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한다.

이후 카이로대 대학원에서 이집트학을 공부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기자 유적지 감독관을 거쳐 이집트 고유물최고위원회(SCA) 사무총장과 초대 유물부 장관을 지내며 이집트 문화재 행정을 이끌었다.

하와스를 국제 고고학계의 거물로 자리매김한 대표적 성과 가운데 하나는 기자 피라미드 노동자 무덤 발굴이었다.

그는 피라미드가 노예들의 희생으로 건설됐다는 오랜 통설에 의문을 제기하며,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생활하고 정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는 고대 이집트 문명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꾼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컴퓨터단층촬영(CT)과 DNA 분석 기법을 활용해 황금 마스크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소년 파라오 투탕카멘의 혈통과 건강 상태를 규명하는 연구를 이끌기도 했다.

그는 이외에도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 미라 확인 연구와 스핑크스 복원 사업,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무덤 찾기 프로젝트 등을 이끌며 이집트 고고학의 대중적 지평을 넓혔다.

삽과 붓에 의존하던 고고학에 첨단 과학을 접목해 현대 이집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와스를 세계적인 인물로 만든 것은 발굴 성과만이 아니었다.

그는 내셔널지오그래픽과 디스커버리 채널 등 다큐멘터리에 꾸준히 출연하며 어려운 고고학을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로 풀어냈다. 갈색 페도라 모자를 쓴 그의 모습은 어느새 이집트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일각에서는 지나친 언론 노출을 비판했지만, 그의 설명을 통해 고대 이집트 문명을 처음 접한 사람이 훨씬 많았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집트가 수십 년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해온 해외 반출 문화재 반환 운동의 중심에도 하와스가 있었다.

그는 "문화재는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때 가장 큰 가치를 지닌다"며 영국 대영박물관의 로제타석과 독일 베를린 신박물관의 네페르티티 흉상 등 이집트 밖으로 반출된 대표적 유물의 반환을 주장하는 국제 여론전을 이끌었다. 로제타석이나 네페르티티 흉상의 귀환은 아직 성사되지 않았지만, 그의 노력으로 수천 점의 이집트 유물이 제자리를 찾았다.

하와스는 약탈당한 문화재 환수 문제를 국제적 의제로 끌어올리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2008년 한국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찾았던 그는 "빼앗긴 유물을 되찾기 위해 국제적 공동보조가 필요하며 한국도 이런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외규장각 의궤 반환 문제가 한창이던 시기여서 이 발언은 한국 내에서도 적잖은 관심을 모았다.

전통적으로 이집트 경제를 떠받치는 세 축은 관광산업과 수에즈운하 통행료, 해외 노동자들의 송금이다. 이 가운데 관광산업의 핵심 자산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투탕카멘으로 대표되는 고대 유적·유물이다.

새로운 발굴과 연구 성과를 꾸준히 세계에 알려온 하와스의 활동은 학술 연구를 넘어 국가 브랜드를 높인 문화외교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집트 정부가 문화유산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중심에 있었다. 대표적인 결실이 2025년 11월 공식 개관한 이집트대박물관(GEM)이다.

총 10만 점이 넘는 유물을 소장한 GEM은 단일 문명을 주제로 한 세계 최대 규모 박물관으로 꼽힌다. 하와스가 수십 년 동안 추구해온 비전이 집약된 공간으로, 특히 투탕카멘 관련 유물이 처음으로 한곳에서 완전한 형태로 공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물론 그의 삶이 찬사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미디어 노출을 앞세워 "고고학을 쇼 비즈니스화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2011년 '아랍의 봄' 당시에는 무바라크 정권과의 유착 논란 속에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일부 비위 의혹으로 수사와 재판까지 받았지만, 주요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여든을 앞둔 지금도 그는 발굴과 연구, 강연 활동을 이어가며 고대 이집트 문명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집트 출신인 모아멘 구다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하와스 박사는 누구보다 고대 이집트 문명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이를 강력한 문화외교의 자산으로 만든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집트 고고학계가 한 사람의 대중적 명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차세대 고고학자들을 폭넓게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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