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애착 인형에 깃든 생명력…태국작가 아룬나논차이 개인전

국제갤러리 부산서 '제의를 품은 신체들'…열화상 영상·회화로 기억의 순환 표현

박의래

| 2026-08-28 08:00:02

▲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개인전 '제의를 품은 신체들' 전시 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작 '타임 오브 디 아더' [국제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작 '오브 더 어스 커버 어스' [국제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작가 (부산=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작가가 27일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자신의 애착 인형을 들고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6.8.27. laecorp@yna.co.kr

(부산=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가족이 오랫동안 품에 안았던 인형에는 어떤 기억이 남아 있을까.

태국 작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40)는 애착 인형과 사람 사이를 오간 체온과 기억을 열화상 영상과 회화로 옮긴다.

국제갤러리는 28일부터 부산점에서 아룬나논차이의 개인전 '제의를 품은 신체들'(Post Ritual Bodies)을 연다.

작가는 지난 10여년간 회화와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을 오가며 기술과 영성, 기억과 개인의 경험이 만나는 지점을 탐구해왔다.

개인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엮어내면서 이미지와 작품을 고정된 재현물이 아니라 애착과 상실, 변형이 반복되는 장으로 바라본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가족과 그들이 오랫동안 아껴온 인형 사이에 축적된 체온과 기억, 돌봄의 순환에 주목한다.

조부모가 생의 마지막 순간 병상에서 곁에 두었던 토끼 인형, 작가와 쌍둥이 형제가 걸음마를 하던 시절 함께했던 곰인형 '마이클'과 '테드', 조카의 동물 인형 등이 작품에 등장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아룬나논차이는 "애착 인형은 우리가 처음 만나는 비인간 친구일 수 있다"며 "상실 이후에는 다시 돌봄의 대상으로 우리 곁에 남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룬나논차이는 가족들이 애착 인형을 안고 있는 모습을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했다.

인형을 끌어안을 때 체온이 옮겨간 자리는 열화상 화면에서 밝게 드러난다. 아룬나논차이는 이를 단순한 온도의 변화가 아니라 사람과 사물 사이를 오간 생명력과 기억, 영성의 흔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우리 몸이 남기는 열의 흔적과 에너지도 영성의 순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며 "사람이 죽으면 다시 땅으로 돌아가 식물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영성 역시 물질적인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촬영한 영상을 투명 스크린에 투사한 뒤, 스크린 표면에 안료와 폴리머를 덧입혀 회화로 바꾼다. 이를 다시 촬영해 스크린에 인쇄하면서 과거와 현재, 영상과 회화의 시간을 한 표면에 겹친다.

사람의 체온이 인형에 남고, 그 흔적이 열화상 이미지와 스크린을 거쳐 다시 회화로 옮겨지는 셈이다. 작가에게 열과 빛은 사람과 사물 사이를 오간 기억과 영성을 가시화하는 매개다.

아룬나논차이는 "태국어에서 영화와 피부는 같은 소리를 가진다. 스크린은 빛의 기억을 기록하는 하나의 신체"라고 말했다. 이어 "회화는 영화를 만들듯 작업하고, 영상은 회화처럼 만들려 한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한편에는 작가가 직접 쓴 기도문을 새긴 바닥 파편도 놓였다. 태국에서 경작이 끝난 뒤 농작물을 태우고 남은 재를 모아 물감과 섞어 만든 작업이다.

농작물을 태우고 남은 재를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정화와 순환이라는 의미와 함께 농작물 소각으로 대기오염이 반복되는 태국의 현실도 환기한다.

아룬나논차이는 불을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물질과 비물질, 땅과 하늘을 잇는 과정으로 본다.

그는 "무언가가 타면 재가 돼 땅으로 돌아가지만, 동시에 어떤 것은 공기 속으로 흩어져 나간다"며 "그 사이에서 물질과 비물질이 연결된다"고 말했다.

아룬나논차이는 태국 방콕 출신으로 현재 방콕과 미국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과 컬럼비아대에서 미술을 공부했으며, 서울 아트선재센터와 뉴욕 모마 PS1, 파리 팔레 드 도쿄, 스톡홀름 현대미술관 등에서 전시를 열었다. 베니스·휘트니·시드니·광주 비엔날레 등에도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뉴욕 휘트니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런던 테이트모던, 루이비통재단 등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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