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코리안] 재일극단 '달오름' 21년째 이끄는 김민수 대표

한센병·간토대지진·조선학교 등 재일동포 역사 무대 올려
"힘든 삶에도 이겨내려는 유머 있어…日 우경화? 연극 통한 연대 믿는다"

정아란

| 2026-08-25 08:00:04

▲ 극단 '달오름'의 김민수 대표 [김민수 대표 제공]
▲ 연극 '섬 아저씨' [일본 국립한센병자료관 홈페이지 캡처]
▲ 김민수 대표와 극단 '달오름' 단원들 [김민수 대표 제공]
▲ 극단 달오름 1인극 '치마저고리' [극단 달오름 제공]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다음달 19일 일본 도쿄의 국립 한센병 요양시설인 다마젠쇼엔(多磨全生園)에서 연극 '섬 아저씨'가 공연된다. 한센병 환자로 격리된 재일조선인과 그와 교류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작품을 만든 이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재일 민족극단 달오름의 김민수(52) 대표다. 재일동포 3세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따라 한센병 요양시설을 수십 차례 드나들었다. 어머니는 제주 4·3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바람 목소리'를 쓴 재일동포 소설가 김창생 씨다.

어릴 적 그저 '친척 아저씨'처럼 여겼던 재일 한센인들의 삶을, 김 대표는 그들이 세상을 뜬 뒤에야 찾아 나섰다. "그분들이 필사적으로 바깥세상과 연결되려고 애썼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자신이 지금 이 땅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세상에 알리고, 다시는 이런 (배제) 정책이 있지 않게끔 하려는 활동의 일환이었다는 걸요."

김 대표가 2005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달오름을 창단한 뒤 무대에 올려온 이야기는 가볍지 않다. 한센병과 간토대지진, 조선학교, 우토로 등 재일동포가 겪어온 질곡의 역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이를 무겁게만 다루지 않는다.

김 대표는 25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무거운 작품을 무겁게 올리면 관객들도 공연 전날부터 마음이 무겁다고들 한다"며 "아무리 우리 삶이 힘들다고 하더라도 이겨내려고 하는 유머가 있기 마련이고, 연극도 그에 초점을 두고 풀어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요즘 '섬 아저씨'뿐 아니라 신작 '가족회의' 준비도 병행하느라 분주하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소재로 한 '가족회의'에는 일본인 배우 3명이 함께한다. 김 대표는 배우들에게 관련 자료를 전달하고 영화 관람도 권하며 끊임없이 작업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중이다. "이 사건을 단순히 조선인의 입장에서 풀기보다는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판단했을지에 초점을 두려 했어요."

일본인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규 단원 가운데 일본인들이 항상 있었고, 10년가량 함께 작업해온 일본인 스태프들도 꾸준히 창작에 힘을 보태 왔다.

재일조선인의 서사를 무대 위에서 풀어내는 작업이다 보니, 만드는 이도 보는 이도 한국인과 일본인이 뒤섞여 있고 무대 위 대사 역시 한국어와 일본어를 오간다.

달오름의 객석도 20년 사이 크게 변했다. 재일동포와 일본인 관객이 반반 정도였던 15년 전과 달리 최근에는 일본인 관객이 약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일본 학교에서 인권교육의 일환으로 작품을 초청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런 관심 속에 달오름은 간사이 연극계에서도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김 대표 어머니인 김창생 작가의 소설을 극화한 작품 '바람의 소리'는 2023년 제1회 간사이연극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이런 관심은 무대 밖에서도 확인된다. 배우이기도 한 김 대표는 2년 전 1930∼1960년대 일본 1세대 여성 법조인들의 일대기를 그려 큰 인기를 끈 NHK 아침드라마 '호랑이에게 날개'에 재일동포 역할로 출연했다. 주인공의 운명을 바꾼 시장 상인으로 등장한 그는 재일동포 1세의 말투를 그대로 살린 연기로 적지 않은 반향을 낳았다.

김 대표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연극을 통한 연대를 믿는다고 했다. "아무리 이 사회가 그렇게 기울어지고 있다고 한들, 그에 대해 한탄하는 일본인들이 많아요. 그걸 우리는 믿고 가는 거죠. 연극을 통한 연대를요."

앞으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로는 1945년 8월 15일 이후 평양에 남겨진 한 일본인 소년의 사연을 꼽았다. 부모를 잃고 일본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던 소년에게 한 평양 시민이 밥 한 끼를 내주며 도움을 줬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20년 넘게 지치지 않고 재일동포 이야기를 무대에 올려온 동력을 묻자 김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예술, 연극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연극을 통해 일본인들과 만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재일동포들과 만나며 그걸 작품으로 담아내는 작업 자체가 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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