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훈
| 2022-06-04 08:00:00
은은한 가야금 소리에 정갈한 음식…경복궁서 느낀 '오감만족'
8일부터 소주방서 '수라간 시식공감'…문헌 속 수라상·다과상 재현
'타락죽' 주제 연극 눈길…격구 등 전통문화 체험도 가능
(서울=연합뉴스) 안정훈 기자 = 초여름 해거름 무렵 경복궁 수라간에서 궁중 연회가 다시금 열렸다. 참가자들은 전통 음식과 음악을 즐기며 조선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특별한 체험을 했다.
지난 3일 오후 6시께 경복궁 소주방 권역에서 다양한 궁중음식을 소개하는 '수라간 시식공감' 사전행사가 개최됐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이 오는 8일 시작하는 본행사를 앞두고 리허설 성격으로 마련한 행사에는 시민과 기자 수십 명이 참가했다.
수라간 시식공감은 조선시대 궁중 연회 음식을 약식으로 재현해 선보이는 '식도락×시식공감'과 궁중 다과를 즐길 수 있는 '밤의 생과방'으로 구성됐다. 격구나 다식 만들기 등 전통문화 체험도 가능했다.
우선 '식도락×시식공감'에 참여하기 위해 외소주방에 들어가자 조선시대 음식을 맡아보던 관아인 사옹원 관리로 분한 직원이 자리로 안내했다.
하얀 꽃이 만발한 나뭇가지로 장식된 자리에는 우유를 넣어 끓인 타락죽, 양념한 돼지고기를 구운 맥적과 같은 정갈한 궁중음식이 놓여 있었다. 특히 말린 민어 살을 바르고 맛을 낸 '암치 보푸라기'가 입맛을 돋웠다.
은은한 가야금 가락을 들으며 여유를 즐기던 와중에 한 궁녀가 급하게 마당에 뛰어 들어오더니 "아까 자리에 인도해준 사옹원 관리를 못 봤는지요"라고 물었다.
궁녀는 몸이 좋지 않은 왕비를 위해 타락죽을 구해야 하나, 그러지 못해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고 했다. 마침 나타난 수라간 최고 책임자 상선 영감이 농을 섞어 궁녀를 타박하고는 타락죽을 구할 묘책을 일러줬다. 연극을 감상하고 오미자차로 입가심을 한 뒤 '밤의 생과방' 장소인 수라간 생과방으로 이동했다.
생과방에서는 궁녀가 다가와 다과 종류를 상세하게 설명해줬다. 참가자들은 소화 불능을 앓던 순조의 건강을 위해 생강과 꿀을 섞어 만들었다는 '담강다'를 포함한 약차 여섯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차와 곁들여 먹는 과자는 세종대왕이 좋아했다는 구선왕도고를 비롯해 개성주악, 개성약과, 호두정과, 매작과, 사과정과가 하나씩 제공됐다.
다과가 나오자 이내 수라간 최고상궁이 마당에 들어와 가야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눈을 감고 가야금 가락을 즐기거나 고즈넉한 풍경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내소주방에서는 '격구', '궁중 다식 만들기', '전통 보자기 매듭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행사가 진행됐다. 입장할 때 받은 안내도에는 참여 시 도장을 찍어주는 확인란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빙고 게임을 하듯 확인란을 도장으로 채워 나갔다.
격구는 본래 말을 탄 채로 즐기는 전통 공놀이지만, 행사장에서는 골프처럼 진행됐다. 채로 공을 일정 거리 이상 보내면 상품으로 스티커를 받을 수 있어서 인기가 많았다.
내소주방과 외소주방을 잇는 '주방골목'에서는 포계, 궁중약식, 연근부각, 도라지, 정과, 박하계피차 같은 또 다른 전통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닭을 기름에 지진 포계를 맛본 참가자는 껄껄 웃으며 "이게 치킨이네"라고 평했다.
주방골목 포토존에서 만난 직장인 정도전(29) 씨는 "밤의 생과방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기대보다 즐겁고 알찼다"며 "격구 체험도 한 번에 성공해서 재밌었다"고 말했다.
조진영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활용실장은 "행사에서 제공되는 음식과 다과는 모두 문헌에 기록돼 있다"며 "시민들이 전통 다과와 수라를 친숙히 느끼고 즐길 기회를 마련하는 게 수라간 시식공감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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