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
| 2026-07-19 08:00:01
(서울=연합뉴스) 조윤희 기자 =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는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진실을 찾으려는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신이 내린 저주와 절망의 소음이 가득한 세상, 피할 수 없는 파멸을 향해 고독하게 울려 퍼지는 한 남자의 절규는 깊은 울림으로 객석에 내려앉았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M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비극의 정수로 꼽히는 세계적인 고전을 무대 위로 소환한 작품이다.
이미 수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고전이지만, 18일 열린 공연에서 오이디푸스 역의 최수종을 필두로 한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는 이 오래된 이야기가 왜 현대에도 계속 회자하고 무대에 오르는지 그 가치를 증명해냈다.
특히 최수종은 2017년 '하늘로 가지 못한 선녀씨 이야기' 이후 9년 만에 다시 연극 무대로 복귀해, 오랜 공백이 무색할 만큼 강렬한 존재감으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작품은 벗어날 수 없는 가혹한 현실 앞에서도 진실을 마주하고자 했던 오이디푸스 왕의 내면을 깊이 파고든다.
신탁의 억압과 가혹한 운명 속에서 그가 느낀 두려움과 괴로움,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하나의 거대한 투쟁의 과정으로 묘사하며 인물의 심리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무대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 관객들을 순식간에 고대 테베의 궁전으로 이동시켰다.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너져가는 왕과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성은 관객들에게 인간의 거대한 운명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듯한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했다.
공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작품의 중심축인 오이디푸스가 파멸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더욱 촘촘해지는 인물들 간의 유기적인 서사였다.
비극적 운명을 직감해 가며 괴로워하는 오이디푸스의 곁을 굳건히 지키는 아내이자, 끝내 잔인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며 어머니임이 드러나는 이오카스테 역의 임강희는 따뜻하면서도 처절한 감정선으로 관객들의 가슴을 울렸다.
여기에 오이디푸스가 애써 외면하고 싶어 하는 파멸의 진실을 날카롭게 쏟아내는 맹인 예언자 테레시아스 역의 박정자는 특유의 존재감으로 극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왕위를 노린다는 오해를 받으며 오이디푸스와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는 크레온 역의 최수형 역시 날 선 카리스마로 비극의 밀도를 더했다.
서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력을 바탕으로 비극적 운명을 맞은 인물의 고통을 고스란히 뱉어낸 최수종은 약 90분의 러닝타임 내내 무대에서 거의 내려가지 않는 강행군을 펼쳤다. 그럼에도 그의 에너지는 극 후반부로 갈수록 오히려 폭발적으로 피어올랐다.
최수종은 눈물을 쏟아내면서도 흔들림 없이 대사를 뿜어내는 열연으로 마치 오이디푸스가 무대 위에 살아 움직이는 듯한 전율을 일으켰다. 공연이 끝나자 이 모습에 전이된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가 극장을 가득 메웠다.
공연은 다음 달 23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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