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숙
| 2026-08-01 08:00:08
(양양=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자연만이 조각할 수 있는 절경, 설악산은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
하지만 주전골 계곡은 산책 나서듯 그 감동 깊숙이 걸어 들어가도록 허락한다. 가족이 안전하고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피서지가 될 수 있다.
◇ 절창(絶唱)의 풍경
설악산은 미시령부터 한계령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주 능선을 기준으로 서쪽 내륙 지역을 내설악, 동쪽 동해안 지역을 외설악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최고봉인 대청봉(1,708m)을 중심으로 한계령 이남의 오색 지구 일대를 남설악으로 분류한다.
오색 지구는 대청봉을 가장 빠르게 오를 수 있는 최단 거리 등산 코스의 시작 점이다.
거리가 짧은 만큼 사계절 내내 많은 등산객이 찾지만, 경사가 가파르고 험준해 체력 소모가 크다.
그러나 오색 지구에 이처럼 험한 코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색 약수터에서 용소폭포까지 이어지는 주전골 계곡은 산세가 험준하지만 길은 대체로 평탄해, 등산에 익숙하지 않은 보통 체력의 소유자들이 어렵지 않게 탐방할 수 있는 명소이다.
오색 약수터에서 시작해 성국사(옛 오색석사)까지 이어지는 주전골 초입 약 700m 구간은 완경사 무장애 탐방로로 조성돼 있어 어린이, 노약자, 휠체어 이용자 등 교통약자들도 다닐 수 있다.
남설악 최고 명소인 오색 주전골은 설악산의 큰 골짜기 중 경치가 제일 수려한 계곡으로 꼽힌다.
기암괴석과 맑은 계류가 어우러지는데, 특히 가을에는 전국 최고의 단풍 명소로 주목받는다.
주전골 계곡의 매력은 여름이라고 해서 덜하지 않다.
한여름에도 찬 기운을 느낄 정도로 녹음이 우거지고, 힘차게 흐르는 계류는 도시의 열기에 지친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한국의 산악미를 대표하는 설악산의 속살을 엿볼 수 있게 스스럼 없이 곁을 내주는 주전골에서는 무더운 여름마저 싱그럽게 느껴진다.
◇ 용소폭포에서 오색 약수터까지…계곡 따라 내려오기
편도 약 3㎞에 이르는 주전골 계곡 탐방은 오색 약수터에서 출발해 성국사를 거쳐 용소폭포까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용소폭포에서 시작해 오색 약수터까지 계곡을 따라 길을 내려오는 '거꾸로' 탐방도 가능하다.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발걸음은 오르막길을 오를 때보다 훨씬 더 가벼워진다.
오색 지구에서 한계령으로 이어지는 44번 국도변에 있는 설악산국립공원 용소폭포 탐방지원센터에서 용소폭포행 탐방로가 시작된다.
용소폭포에는 슬픈 사연이 얽혀 있다.
용이 되기 위해 천년을 기다린 이무기가 용이 되지 못해 비관하다 죽었는데 그가 흘린 눈물이 폭포를 만들었다는 전설이다.
전설은 꿈을 이루지 못하는 뭇사람의 숙명을 은유하리라.
용트림하듯 거센 물줄기는 폭포 아래 깊은 소를 파놓았고, 비췻빛 맑은 물이 그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 인간의 욕망이 주전골 이름을 만들었나
약간은 생소한 주전골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다양하다.
조선 시대 강원도 관찰사가 한계령을 넘다가 이곳에서 도적들의 엽전 위조 현장을 발견하고 일망타진한 것이 유래라는 설이 대표적이다.
암석이 쪼개져 여러 층 겹친 모습이 마치 동전을 쌓아 올린 것 같다는 데서 이름이 비롯됐다고 보기도 한다.
이 계곡에는 판상절리가 발달한 암석이 산재해 있다.
판상절리는 지각변동으로 인해 암석이 얇은 널판처럼 가로로 쪼개진 것을 말한다.
판상절리가 뚜렷한 이곳 바위들은 주전바위라고 불린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계곡 지형이 엽전을 주조하는 틀 모양이라는 데서 지명의 내력을 찾기도 한다.
'주전'의 한자는 '鑄'(쇠 부어 만들 주)와 '錢'(돈 전)이다.
◇ 금강문·선녀탕·독주암
주전골에서 눈에 띄는 명소는 특이한 바위인 금강문, 물이 맑고 깊은 선녀탕, 거대한 기암괴석인 독주암 등이다.
금강문은 'ㅅ'자 모양으로 겹친 큰 바위 2개로 이루어져 있다.
바위 사이 통로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지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을 간직하고 있다.
'홀로 앉는다'는 뜻의 독주암은 높이가 약 120m에 이른다. 바위 꼭대기에 한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좁은 자리가 있다고 전해진다.
옛날에는 바위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다고 한다.
벼랑 끝 같은 진리의 고지, 그 위태로운 정상에 수도자는 마침내 가닿을 수 있을까.
가만히 합장한 노승의 돌아선 모습이 외로이 솟은 독주암을 스친다.
독주암을 비롯해 주전골의 기암괴석들은 부드러운 황톳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일조량이 적을 수밖에 없는 협곡인데도 계곡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한반도는 지각의 대부분이 밝은 회색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전골 바위들도 화강암인데 다른 곳 암석에 비해 철분이 많아 붉은 기가 돈다.
오색의 약수와 온천수도 철분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명성을 떨치던 오색 약수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고갈됐는지 요즘 수량이 많지 않다.
옛 오색석사 터로 추정되는 곳에 있는 성국사 마당에는 신라 시대 석탑 양식을 따른 오색리 삼층석탑이 서 있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데다 모양이 단정하고 우아해 국가 유산 보물로 지정돼 있다.
압도하는 남설악의 비경 속에서 가파른 등산로 대신 평탄한 계곡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지친 일상은 씻겨 내려가고 맑은 자연만이 가슴에 남는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8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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