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숙
| 2026-08-02 08:00:24
(강릉=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짙푸른 정동진 바다를 내려다보고, 숲이 울창한 괘방산에 안긴 하슬라아트월드는 자연과 예술 속 휴식을 가능하게 한다.
여름은 겨우 문턱을 넘었는데 에메랄드빛 바다와, 시원한 바람, 가슴을 열어주는 예술 작품을 찾는 발길은 이미 붐비고 있었다.
◇ 머나먼 과거의 이름과 트렌디한 현대 미술의 만남
'하슬라'는 삼국 시대에 강릉을 일컫던 지명이다. '해밝음'을 뜻한다.
괘방산의 끝자락, 동해안 절벽에 자리 잡은 하슬라아트월드는 태곳적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대자연에 안겨 있다.
앞으로는 정동진의 푸른 바다가 장대하게 펼쳐지고, 뒤로는 백두대간 능선이 한없이 이어진다.
하늘을 이고 우뚝 솟은 미술관에는 옛것, 자연과는 대비되는 세련되고 감각적인 현대 미술 작품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미술관 입구, 천년초 군락 사이로 드러낸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얼굴 조각은 이곳이 강릉임을 일깨운다.
하슬라아트월드의 대표 작가이자 대지미술가인 최옥영(67) 조각가는 고향이 강릉이다.
대지미술은 자연을 캔버스로 삼는 조각, 설치 예술이다.
강릉 산하의 아름다움이 그가 창조한 작품과 미술 공간에 녹아들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그와 마찬가지로 조각가인 부인 박신정(64)과 하슬라아트월드를 공동 기획하고 설립했다.
◇ 바다, 산, 자연과 하나 되는 예술
하슬라아트월드의 주요 설치 미술을 관람하고 구석구석 공간을 누비다 보면 자연과 예술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관람객이 무척 사랑하는 '동그라미 포토존'에서는 자연, 예술, 사람이 일체를 이루며 작품이 완성된다.
바다를 향해 비어있는 공간에 관객이 들어가 비로소 완전한 작품이 된다.
수많은 쇠 파이프를 꽂아 넘실대는 물결을 표현한 '은빛파도'는 절벽 너머 펼쳐지는 동해를 빼고는 존재를 상상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탁명열, 김병헌, 최옥영이 공동 제작한 이 작품은 쇠 파이프를 덧대는 제작 작업이 지금도 계속되는 '현재 진행형'이다.
하슬라아트월드에서 제일 먼저 조성된 미술 공간인 야외 조각공원에는 야산 능선을 따라 조각 작품들이 산재해 있다.
작품들은 바다를 정원인 양 내려다본다.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고대 조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재창조한 최옥영의 작품이 늘어서 있다.
◇ 미술관, 공원,호텔,레스토랑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
하슬라아트월드는 전시 작품이 풍부하고 다양한 만큼이나 공간 구성이 다채로운 복합문화공간이다.
뮤지엄호텔, 야외조각공원, 현대미술관, 피노키오박물관, 오션스퀘어관, 레스토랑, 카페 등이 혼재돼 있다.
작품과 전시 공간은 경계가 무너지거나 모호해지기 일쑤다.
뮤지엄호텔은 객실이 하나의 작품이 되는 미술관호텔이다.
모든 객실은 그 자체가 최옥영의 작품으로, 저마다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침대는 깎아서 만든 조각 작품이며 세면대, 욕조, 테이블 등 가구도 마찬가지다.
현대미술관 1관에 전시된 최옥영의 작품 '우주'는 실제로 객실에 침대 틀로 비치돼 있다.
나무로 만든 둥근 틀인 '우주'는 거대한 우주 안에 소우주인 사람이 포근하게 담기는 것을 표현하며 어머니 자궁을 떠올린다.
◇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들
하슬라아트월드는 입장료 수입으로 운영 경비의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미술관 중 하나이다. 그만큼 관람객이 많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산, 바다로 떠나는 여름 휴가철은 관람객이 급증하는 '성수기'이다.
하슬라아트월드의 이남일 차장은 이 미술관의 성공 배경으로 작품의 대중성을 꼽았다.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작품들을 전시하고, 관람객이 자유롭게 사진 찍는 등 작품에 다가갈 수 있게 전시하는 것이 성공 비결이라는 것이다.
조각, 회화, 설치 미술 등 다양한 국가 출신 작가들의 작품 수백 점이 전시돼 눈을 호강시킨다.
작품들은 저마다 독자적인 인격체인 양 개성과 기법이 달랐다.
감상자의 흥미와 관점에 따라 선호 작품은 각양각색이리라.
관람객 발길을 오래 붙잡는 것으로 보인 작품 몇몇을 꼽자면 양태근의 '하마'와 '악어'를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공업용 스테이플러 심을 박아 제작한, 험상궂은 동물 상인 '하마'는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이 맞닥뜨릴 수 있는 재앙을 드러내고자 한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붉은 색 비닐 끈으로 벽과 공간을 이은 최옥영의 '레드'는 감상자들에게 탄성을 자아냈다.
란토모, 제라르 마스, 에프라임 로드리게스 등 외국 작가 3인의 작품을 릴레이 전시한 '보이는 것 너머: 현대 사실주의의 세 얼굴'은 단순한 현실 모방이 아니었고, 감정의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에 관해 묻고 있었다.
오귀스트 로댕의 '보닛이 달린 카미유 클로델의 머리'에는 '1884년 구상, 1971년 주조'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우울한 표정의 클로델과 자유분방한 현대 작품들은 대조를 이루는 동시에 서로를 비추며 부각하고 있었다.
동화 '피노키오'에 등장하는 고래 배 속을 연상시키는 설치미술 터널을 통과하면 피노키오 박물관이 나온다.
세계 여러 나라 작가가 만든 피노키오 인형, 마리오네뜨 작품, 움직이는 오토마타 마리봇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오토마타 작품들은 공학과 예술의 접목이었다.
◇ 변화하고 확장하는 예술 공간
하슬라아트월드는 2003년 야외조각공원을 선보이면서 문을 열었다.
야외조각공원의 면적은 약 3만평이다. 현재 하슬라아트월드의 전체 부지는 15만2천여 평에 이른다.
끊임없이 전시 기획에 변화를 주고 작품 공간을 확장한 결과이다.
올해는 대규모 설치미술과 대지미술의 융합인 오션스퀘어관을 정식 개관했다.
하슬라아트월드는 꾸준한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도 주목받는다.
레지던시는 예술가들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숙식을 제공하며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 20여년간 미국, 프랑스, 독일, 아프리카,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 등 20여 개국에서 500여명의 예술가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하슬라아트월드에 작품을 남겼다.
동해를 정면으로 마주한 하슬라아트월드 일대는 일출 명소이기도 하다.
올해 여름 정동진, 등명해수욕장, 강릉임해자연휴양림 등에 숙소를 잡는다면 일출 감상은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8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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